[야설 게시판] 선배녀 - 25부 - 딸타임

선배녀 - 25부

나는 일단 누나를 일으켜 앉혔다. 누나는 잠에 취해 몸이 자꾸 쓰러지려 했다. 나는 한 손으로 누나의 몸을 꽉 붙들고 다른 한 손으로 티셔츠를 조금씩 벗겨나갔다. 티셔츠를 벗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다만 티셔츠가 조금 늘어났을지도 몰랐다. 어차피 내가 입을 것도 아니니 상관없었다.



파자마를 집으려고 누나의 몸을 놓았더니 풀썩하며 침대 위로 쓰러지는 누나였다. 다시 일으켜 세웠다가 놓으니 바로 또 쓰러졌다. 한 손으로는 누나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만 낑낑대며 입혀도 될 일이었지만 나는 순간 재밌는 놀이가 떠올랐다. 일종의 나의 순발력을 테스트하는 놀이였다.



나는 누나를 일으켜 세우고 놓자마자 파자마를 집어 누나의 머리에 집어넣으려 했지만 첫 번째 시도에서는 실패했다. 생각보다 어려웠다. 첫 번째 시도로만 본다면 성공과는 거리가 멀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너무 여유 부렸다고 채찍질하고는 심기일전해서 두 번째 시도에 임했다. 이번에도 실패였다. 이번에는 간발의 차이였다. 파자마가 누나의 머리에까지는 걸렸지만 누나가 뒤로 넘어가며 빠지고 말았다. 그 순간 힘을 줘서 버티기만 했어도 누나가 쓰러지면서 자동으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세 번째, 네 번째, 그리고 어느덧 열 번째 시도까지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두 번째 시도가 아슬아슬했기에 희망을 갖고 계속 했으나 회를 거듭할수록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룰을 바꿨다. 한 손으로 파자마를 잡고 있다가 누나를 놓고 쓰러지기 전에 입히는 것으로 말이다.



단번에 성공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자축했지만 씁쓸한 마음은 지울 수 없었다. 나만의 놀이가 끝나고 보니 누나가 불쌍했다. 만약 누나가 내일 일어나서 머리가 아프다거나 어깨가 뻐근하다면 술을 마셔서가 아니라 나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는 놀이는 이제 그만하고 파자마를 마저 입히기로 했다. 파자마 안쪽에서 누나의 양 팔을 꺼내고 밑단을 대충 끌어내려 배까지는 덮었다.



이제 바지만 벗기면 내 임무는 끝났다. 청바지의 단추를 풀고 지퍼를 내렸는데 보지털을 덮고 있어야 할 천 쪼가리가 보이지 않았다. 꽉 끼는 청바지에 노팬티로 다니면 보지가 따갑지 않을까 생각하며 누나의 발쪽으로 이동했다. 청바지 밑단을 잡긴 했지만 당기기가 망설여졌다. 내가 힘을 주어 당기는 순간 나는 누나의 보지를 보게 될 것이다.



아무리 거리낄 게 없는 가족이라 해도 이 선을 넘어가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놔두고 가면 더 이상할 것 같았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몇 차례 힘껏 잡아당겨 청바지를 수중에 넣을 수 있었다.



눈을 뜨자 거울에 비친 누나의 다리가 보였다. 그리고 다리를 거슬러 올라가자 보지털도 보였다. 이 정도는 실수로 몇 번 본 적이 있는 장면이었다. 그래도 내 몸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는지 청바지를 꽉 쥐고 있었다. 난 청바지를 집어던지고 돌아서나오려고 발걸음을 옮겼다.



방을 나서려는데 누나가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아니, 무의식적이라고 하기에는 반응속도가 너무나도 빨랐다. 무의식적으로 돌아볼 핑계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누나가 한 쪽 무릎을 세우고 있었다. 그 때문에 누나의 보지는 한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봐서 그런지 뭔가 이상했다. 어쩌면 이상하다고 믿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그 핑계로 또 가까이 가서 보길 원했던 것 일수도 있다. 어쨌든 난 가까이 가서 봐야한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가 생겼다.



다가갈수록 내 욕망이 부른 환상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누나의 보지는 이상하게도 지저분해보였다. 가까이 가서 마주한 순간에야 난 그 실체를 알 수 있었다. 누나의 보지에는 말라붙은 정액으로 얼룩덜룩했다. 만약 엄마가 누나의 옷을 갈아입혔다면 어쩔 뻔했는지 생각만 해도 내가 다 미안했다.



누나의 보지는 보면 볼수록 더러워보였다. 자지가 누나의 보지를 가르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다른 남자의 자지를 떠올리고 있으니 구역질이 나려 했다. 게다가 정액냄새마저 풍기는 것 같았다.



보지를 보고 있으면 만지고 싶은 마음이 들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누나의 보지를 만지기 이전에 다른 남자의 정액을 만지게 될 거라는 생각에 보고 싶은 마음마저 사라지는 중이었다.



나는 재미없는 누나의 보지탐험을 그만두고 방으로 돌아갔다.







* * *







이른 아침부터 엄마의 잔소리가 들려왔다. 방에서 나오니 누나가 정수기에서 물을 받고 있었고 엄마는 누나의 뒤통수에 잔소리 폭격을 퍼붓고 있었다. 누나는 엄마의 잔소리가 들리지도 않는지 물을 마시고 소파로 가서 드러누웠다. 나도 물을 한 잔 마시고 식사를 준비하는 엄마를 뒤에서 안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엄마, 두들겨 패.”



“다 큰 계집애를 때릴 수도 없고 정말.”



난 거실로 걸어가며 말했다.



“쟤는 맞아야 돼.”



이쯤하면 누나는 내게 눈을 부라리며 한소리 했을 법한데도 들은 체 만 체 하고 있었다. 난 누나 옆에 앉으며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누나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누나는 날 쳐다보지도 않았고,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누나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엄마에게로 다가가서 말했다.



“엄마가 내 옷 갈아입혔어?”



“네가 뭘 잘했다고 옷을 갈아입혀줘.”



“아니야?”



“이 계집애야. 또 그렇게 술 취해서 정신도 못 차리고 올 거야, 안 올 거야?”



“안 그럴게. 미안해.”



누나는 식탁에 앉아 멍하니 있었고, 나도 식사를 하려고 식탁으로 갔다. 내가 자리에 앉으니 누나는 날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깐 본 체 만 체 하더니 누나의 속은 알 수가 없었다.



“왜? 뭐 묻었어?”



“네가 갈아입혔냐?”



“내가 왜?”



“정말 아냐?”



“네가 자다 깨서 갈아입었나보지. 무슨 문제 있어? 뭐 없어졌냐?”



“아니, 그럼 됐어.”



내가 옷 갈아입히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열 배로 불려서 생색내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무래도 누나가 창피할 것 같아 나름의 배려를 해준 것이었다.



“누구랑 그렇게 술 마셨어?”



“누구라 그러면 네가 알아?”



“남자냐?”



“난 남자만 만나냐? 여자다. 됐냐?”



먹히지도 않는 거짓말을 잘도 내뱉었다. 남자랑 마신 게 아니라면 보지에 듬뿍 묻어있던 정액은 남자의 것이 아니라는 말인가. 웃기지도 않았다. 뻔히 가랑이 벌려주고 온 거 다 아는데 이렇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게 같잖아 보였다. 몸을 막 굴리고 다니는 누나가 한심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간섭하지 않기로 하고 모른 척 눈 감아줬다.







* * *







지연이 누나가 변했다. 어쩌면 내가 변했기에 지연이 누나가 변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지연이 누나에게는 날 향한 집착이 생겼다. 소연이 얘기로 힘들게 하는 대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하고 메시지를 보내며 날 확인하는 지연이 누나였다. 내가 어디서 뭘 하는지 누구와 함께 있는지 지연이 누나를 향한 내 마음이 변하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지연이 누나였다. 그건 소연이와 내가 단둘이 있을 때도 그치지 않았다. 계속해서 울려대는 핸드폰에 나는 소연이와 함께 있을 때면 핸드폰을 꺼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지연이 누나의 화를 돋우는 요소로 작용했고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 지연이 누나였다. 물론 오늘도 다르지 않았다. 다른 게 있다면 집까지 찾아와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소연이 만나서 또 핸드폰 꺼놨어?”



“응.”



“너 왜 그래? 소연이랑 대체 뭘 하기에 핸드폰을 꺼놓는 거야?”



“하긴 뭘 해? 밥만 먹었어.”



“잔 거 아냐?”



“무슨 소리야?”



“그럼 핸드폰 꺼놓을 필요까진 없잖아.”



똑같은 레퍼토리였다. 지겨웠다. 말대꾸도 하기 싫었다. 지연이 누나를 더 이상 보고 싶지도 않았다. 지연이 누나에게서 내 맘이 떠나고 있다는 게 눈으로도 보일 정도였지만 나는 잡으려 하지도 않았고 잡고 싶지도 않았다.



“데려다줄게. 가자.”



“왜 대답을 피해? 진짜 잤어?”



“잤으면? 잤으면 어쩔 건데?”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화를 내는 내 모습에 지연이 누나는 잠깐 움찔하더니 눈물을 글썽였다.



“정말 잤어?”



“잤다. 잤어.”



“정말이야?”



지연이 누나의 큰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모습까지도 나는 화가 났다.



“어. 진짜 잤어.”



“거짓말하지 마. 너 안 잤잖아.”



어이가 없었다. 내가 거짓으로 지연이 누나를 안심시키려 했을 때는 그게 거짓이라고 늘 따지고 들어놓고는 이제 진실을 말해주니 그걸 또 부정하고 있었다. 이렇게 내가 진실을 말해줘도 안 믿을 거면서 왜 그렇게 추궁을 했던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잤으니까 이제 그만 좀 물어봐.”



“거짓말! 나 못 믿겠어. 거짓말하지 말란 말이야!”



급기야 지연이 누나는 울음을 터트리며 소리를 질렀다. 집 앞에서 이러니 난감했다. 누가 와서 볼까 걱정되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몰라도 누구 집 아들이라는 건 다 아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우리 어디 가서 이야기하자.”



“왜? 쪽팔려?”



“아냐. 우리 얘기 좀 나누면서 풀어야 할 거 같아서 그래.”



“여기서 하면 되잖아.”



“우리 꼬인 게 너무 많은 거 같아. 어디 앉아서 찬찬히 얘기하자.”



“거짓말, 다 거짓말, 네가 말하는 거 다 거짓말이야. 나쁜 놈.”



“지금 우리한테 필요한 건 싸움이 아니라 대화야. 진정하고 얘기해. 응?”



“넌 거짓말쟁이야. 거짓말쟁이랑 무슨 얘기를 해?”



내가 거짓말을 한 것도 맞고, 거짓말쟁이인 것도 맞고, 쪽팔리는 것도 맞으니까 제발 여기를 벗어나서 얘기하기를 바랐다. 다른 데 가자는 말만은 진심이었던 것인데 그 진심은 받아들여주지 않는 지연이 누나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지연이 누나의 손목을 잡고 큰 길로 나갔다. 길 건너 커피전문점을 갈까 하다가 우선 이 동네를 벗어나고 싶어 택시를 잡았다.



“어디로 모실까요?”



동네만 벗어날 수 있음 어디든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동네를 벗어날 수 있으면서도 집에서 가까운 곳이 더 좋을 것 같아 집에서 두 정거장 정도 떨어진 곳으로 가자고 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어차피 지연이 누나를 바래다주어야 했기 때문에 난 지연이 누나 집 쪽으로 행선지를 바꿨다.



지연이 누나는 택시에서 내내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면서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바닥을 내려다보면서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난 지연이 누나의 손을 잡으려했지만 지연이 누나가 뿌리쳤다. 다시 한 번 지연이 누나 손을 잡았고 이번에는 뿌리쳐도 떨어지지 않았다. 두어 번 더 뿌리치려했지만 내 손이 떨어지지 않자 그냥 잠자코 눈물만 흘리는 지연이 누나였다.



요금을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렸을 때 지연이 누나는 저만치 앞에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뛰어가서 지연이 누나에게 따라붙었다. 지연이 누나는 말없이 걷기만 했다. 나도 말없이 걸었다. 어느덧 지연이 누나의 집 앞에 당도했고, 지연이 누나는 그대로 집에 들어가려했다. 난 지연이 누나를 붙잡았다.



“그냥 들어갈 거야?”



“응.”



“얘기 안 해?”



“응.”



“얘기 하자.”



“나 들어갈래.”



“얘기 하자고.”



“너랑 더 얘기하기 싫어. 자꾸 거짓말하면서 순간만 모면하려는 널 보면 화가 나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이상하게 여기가, 여기가 너무 아파.”



자신의 가슴을 매만지며 눈물을 쏟아내는 지연이 누나를 보고 있자니 괜스레 코끝이 찡해졌다. 지연이 누나는 울먹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너 만나는 게, 널 사랑하는 게 이렇게 아프고 힘든 일인 줄 몰랐어.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픈데, 다른 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힘든데, 그런데, 그런데도 널 못 보는 것보다, 너랑 헤어지는 것보다 아프진 않을 거 같아서 헤어지잔 말도 못하는 내 맘 알아?”



나는 그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차라리 그냥 들어간다고 할 때 들여보낼 걸 하는 후회도 들었다. 이런 가슴 아픈 지연이 누나의 진심을 조금만 더 일찍 들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았다. 내 맘이 이렇게 지연이 누나를 떠나버리기 전이었다면 내 모든 걸 지연이 누나에게 걸었을 것 같을 정도로 마음을 흔드는 얘기인 건 확실했다.



“미안해.”



난 지연이 누나를 꼭 안아주었고, 내 품에 안겨 지연이 누나는 펑펑 울고 있었다. 내 가슴이 축축하게 젖을 만큼 지연이 누나는 울었다. 지연이 누나의 어깨가 진정되어 간다고 느낄 때 지연이 누나는 내 품에서 떨어지더니 돌아서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지연이 누나가 내 눈앞에서 사라진 뒤에도 나는 한참이나 멍하니 서있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이제 정리할 때가 되었다. 더 큰 상처를 주기 전에 누군가 한 명은 분명 정리를 해야 했다.







* * *







기말고사가 끝나고 첫 번째 방학을 맞이한 행복한 날이다. 시은이의 생일 파티를 열어주는 날이기도 했다.



중간고사 때와 마찬가지로 시은이와 나는 도서관 옥상 데이트를 즐겼다. 그러다가 생일 이야기가 나왔고, 시은이는 자신의 이번 생일이 조용히 넘어갈 수밖에 없을 거라고 했다. 소연이를 비롯하여 동기들 대부분이 시험이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시은이의 다른 친구들도 시험이 남아있을 거라고 했단다. 시은이와 나 그리고 현준이만 그날 시험이 끝나는데 현준이에게 시은이를 맡길 순 없었다. 그래서 나는 소연이의 삐침을 각오하고 시은이의 생일 파티를 해주기로 결심했다.



나는 시험을 끝내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일단 예약해놓은 호텔파티룸으로 날아가 객실을 꾸미기 시작했다. 풍선을 띄워 천장에 가득 채웠고, 바닥에도 풍선을 깔았다. 풍선에 바람 넣는 도구를 사용하니까 힘 안 들이고 금방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것도 은근히 일이었다. 고작 이거 하나 했는데도 이제 더 하기 싫어지고 내가 왜 사서 고생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은이는 그저 친구일 뿐인데 내가 이렇게까지 해준 것도 충분히 감동적인 일이라고 자위를 하며 그만하기로 했다. 그래서 ‘생일 축하해’ 라는 문구가 들어간 알록달록한 플래카드를 벽에 붙이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준비했었던 다른 것들은 한 쪽 구석으로 치워버렸다.



나는 다시 학교로 갔다. 주인공을 모셔올 참이었다. 시은이의 시험이 마칠 때가 다 되어 시험 끝나면 전화하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기도 전에 시은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험이 끝나서 나오는데 내게 메시지가 왔다는 것이었다. 타이밍 한 번 기가 막혔다.



시은이는 날 보자마자 시험 잘 쳤냐고 물어왔다. 난 미소를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오늘 네 생일이니까 그런 나쁜 얘기는 하지 말자.”



“너 내 생일 챙겨주려고 온 거야?”



“당연하지. 내가 안 챙겨주면 누가 챙겨줘?”



“현준이가 아까 만나자고 했는데.”



“그래서 만나기로 했어?”



“이따 보고 얘기해준다고 했어.”



“만날 거야?”



“만날까?”



“아니, 안 돼. 오늘 내가 축하해줘야 된단 말이야.”



“뭐 준비라도 했나봐? 나 기대해도 돼?”



“준비는 무슨……. 그냥 밥 먹는 거지.”



“칫,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맛있는 거나 사줘. 설마 밥도 내가 사줘야 되는 건 아니지?”



“내가 그 정도까지 매너 없는 놈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나는 시은이를 껍데기 집으로 데려갔다. 시은이는 껍데기를 안 먹는 건 아니었지만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고른 곳이 여기였다. 감동 두 배를 위한 큰 실망 안기기 전략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가 맛있는 데야?”



“껍데기 안 먹은 지 오래 됐잖아.”



“내가 낼 테니까 딴 데 가면 안 돼?”



“이왕 온 거 조금만 먹고 가자.”



시은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다시 앉았다. 다 구워진 껍데기를 내가 맛있게 먹자 시은이도 마지못해 두어 점 집어먹더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실망했겠다 싶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다 먹고 가지?”



뾰로통해진 시은이는 내게 톡 쏘아붙였지만 나는 능글맞게 웃으며 대답했다.



“됐어. 많이 먹었어.”



시은이는 단단히 삐쳤는지 아무 말도 않고 걷고 있었다.



“네가 낸다고 그랬지? 나 진짜 맛있는데 아는데 거기로 갈래?”



“이번엔 곱창이야?”



“그런 거 아니야. 일단 따라와.”



“또 그런 데기만 해봐.”



나는 호텔파티룸이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시은이는 들어가려는 건물을 보더니 멈칫했다. 파티룸이라고 해봤자 모텔을 예쁘게 잘 꾸며놓은 거에 지나지 않다는 것에 대해 나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더더군다나 건물 외관은 모텔과 다름이 없었다. 이렇게 들어오기 전에 시은이가 거부감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왜 못했는지 몰랐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내가 널 위해 풍선도 불고 서프라이즈 파티를 준비해놨어 라고 밝힐 수도 없는 노릇이라 참으로 난감했다.



“가자는 데가 여기였어?”



“저기 진짜 끝내주게 맛있는 거 팔아.”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는 거야.”



“한 번만 믿어봐.”



나는 시은이의 손을 잡고 이끌었고 시은이는 의외로 쉽게 따라왔다. 방에 들어서며 나는 생일축하노래를 불러주었고, 테이블 위에 준비해놓은 케이크에 불을 붙였다. 시은이는 정말 눈곱만큼도 예상하지 못했었던 건지 눈물을 흘리며 멍하니 서있었다. 생일축하노래가 끝났음에도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시은이였다.



“시은아, 초 불어야지.”



시은이는 불라는 초는 안 불고 내게 와락 안겼다.



“고마워.”



“고맙다는 말은 촛불 끄고, 소원 빌고, 선물까지 받고 해.”



시은이가 초를 향해 바람을 불었고, 촛불이 꺼지면서 폭죽도 터졌다. 이어서 나의 선물증정식이 있었다. 시은이에게 잘 어울릴 거 같아서 산 귀걸이였다. 시은이는 포장을 열어보더니 활짝 웃었다.



“예쁘다. 내가 좋아하는 모양이야. 정말 고마워.”



“그럼 나 오늘 너 감동주기 성공한 거 맞아?”



“응. 껍데기 집만 없었음 완벽했겠지만.”



“껍데기 집은 감동을 배가시키기 위한 장치였다고.”



“그런 거였어? 다음부턴 그런 장치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아. 아무튼 정말, 정말 고마워. 뽀뽀라도 해주고 싶지만…….”



“해줘도 돼.”



“소연이한테 안 이를 거지?”



“응. 안 일러.”



“그럼 나 진짜 한다?”



“자, 해 줘.”



나는 입술을 한껏 내밀었다. 하지만 시은이는 내 볼에 쪽하고 뽀뽀를 해주었다.



“치, 어쨌든 이제 와인이나 할까?”



“응. 근데 나 배고픈데 케이크 말고는 먹을 거 없어?”



“왜 없겠니? 기다려봐.”



나는 준비한 치즈와 참치크래커 그리고 과일을 내보였다. 하지만 시은이의 표정이 뭔가 시원찮았다.



“맘에 안 들어?”



“아니, 좋긴 한데 좀 출출해서…….”



“비장의 무기를 꺼내야겠군.”



나는 마지막으로 생선초밥을 꺼내들었다. 물론 시은이가 생선초밥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준비한 거였으므로 자신 있었다. 역시나 시은이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시은이는 배고프다고 했으면서도 나에게 먼저 하나 먹여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입에 초밥을 넣는 시은이를 보니 내가 참 좋은 친구를 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껍데기 집에서 못다 했었던 식사를 끝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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