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게시판] 선배녀 - 30부 - 딸타임

선배녀 - 30부

“그렇게 잘 거야?”



“응?”



“옷 입고 잘 거냐고.”



“아니. 옷 갈아입고 올게.”



“됐어. 언제부터 네가 잠옷입고 잤다고 그래. 그냥 벗어.”



내가 팬티만 입고 있는 모습을 누나가 못 본 것도 아니었다. 팬티만 입고 자고 있는 나를 깨울 때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내 방에 불쑥 들어와 얘기할 때면 난 팬티차림일 때가 종종 있었기에 팬티만 입고 있는 모습을 누나한테 보인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담감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침대에 누워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팬티만 입고 있을 거라는 것에 대해 묘한 긴장감이 생겼다.



“빨리 벗어. 내가 답답해 보여.”



난 누나의 재촉에 옷을 하나, 하나 벗어 바닥으로 던졌다. 그렇게 나는 팬티바람으로 누나랑 나란히 누워 어렸을 적 이야기들로 웃음꽃을 피웠다. 이십 년을 같이 살았으니 추억거리도 많았다. 누나와 나의 추억들만 곱씹어도 몇 날 며칠을 지새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도 기억나?”



“뭐?”



“엄마랑 너랑 나랑 목욕하다가 너 울었던 거.”



“내가? 왜?”



“너는 꼬추 있는데 왜 엄마랑 나는 없냐고 물어봐서 넌 아빠 아들이고 난 엄마 딸이라서 그렇다고 했었잖아.”



“그래? 근데 왜 울어?”



“엄마랑 아빠랑 재혼한 거고 넌 엄마 친아들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했었거든. 그랬더니 얼마나 서럽게 울던지.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 순진했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됐니?”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너무 생소한 기억이라 누나가 날 놀리려고 지어낸 얘기가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내가 그랬다고? 내가 그렇게 멍청했다고? 말이 돼?”



“너도 그런 시절이 있었어.”



“웃기네. 뻥치지 마.”



“아, 또 그런 적도 있었어.”



“또 뭐?”



“난 어떻게 오줌 누냐고 보여 달라고 해서 내가 보여주고 그랬었지.”



“너 자꾸 뻥치는 거지?”



“야! 네가 신기하다고 만져보기도 했었잖아.”



사실 이건 어렴풋이 기억났지만 기억난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부끄러워 계속 시치미를 뗐다.



“몰라. 그런 적 없어. 자꾸 지어내지 마.”



“그땐 오줌밖에 눌 줄 모르던 꼬추가 이젠 이렇게 커서 어른놀이 하고 다니네.”



누나는 그러면서 내 자지를 누나의 손에 넣었다.



“뭐하는 짓이야?”



“뭐 어때? 누나가 동생 꼬추 한 번 만져보겠다는데.”



“하지 마. 손 떼.”



난 말로는 거부하고 있었지만 몸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성적으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마음속 깊이 어딘가에서 이런 상황을 기대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많이 컸구나. 생각보다 많이 컸어. 어릴 때 진짜 쪼그만 해서 별로 안 클 줄 알았는데…….”



“그만해. 자꾸 만지니까 흥분되잖아.”



누나의 손놀림에 내 자지는 충분히 커져버렸다. 팬티가 갑갑할 정도로 커진 내 자지를 팬티 위로만 만지기는 누나도 답답했던지 팬티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이미 흥분된 거 같은데? 너 좀 괜찮은 거 달고 다니네. 얼굴만 봐줄만한 줄 알았더니 내 동생 자지도 볼만해.”



“알았으니까 그만해. 나 흥분시켜서 어쩌려고?”



“어쩌긴 뭘 어째?”



“그래. 갖고 놀든지 말든지.”



실컷 갖고 놀다가 제자리에만 갖다 두면 된다는 생각으로 난 누나에게 내 자지를 맡기고 있었다. 그런데 내 욕구가 날 가만히 두지 않았다. 난 조금씩 흥분해 점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누나의 손이 아닌 입이 내 자지를 갖고 놀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부터 누나의 보지를 유린하는 상상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아, 진짜 그만해.”



난 이러다가 진짜 무슨 일이 날 거 같아 누나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누나는 내 자지를 붙들고 놓지 않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 미쳤나봐. 지금은 이런 생각하면 안 되는데, 정말 현실이 될 수도 있는데, 네 자지 계속 만지고 있으니까 너랑 하고 싶어. 그래서 손을 못 놓겠어.”



누나는 술기운에 이미 이성을 잃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이성이 날 더 많이 지배하고 있었기에 누나의 말에 움직이지 않았다. 누나와의 섹스까지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난 누나의 몸 위로 올라타지 않으려 점점 흐려지는 이성의 끈을 잡고 버텼다. 그렇다고 누나의 손길까지 거부하는 것도 아니었다.



“너 취해서 그래. 일어나면 기억 못 할 수도 있고, 기억한다해도 후회할 거야.”



“그렇겠지. 아마 그럴 거야.”



누나는 내 말에 수긍했지만 여전히 내 자지를 주무르듯 만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내 손을 이끌어 누나의 가슴 위로 가져다 놓았다.



“윤호야, 나도 만져줘.”



누나의 가슴에 얹혀있는 내 손은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않았다.



“얼른.”



누나의 가슴을 주물럭거리는 게 절대 싫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조금씩 나아가다가 걷잡을 수 없을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있었다. 누나가 내 자지를 만지는 것까지는 허락해줬으니 내가 누나의 몸을 만지는 것까지도 허락해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합리화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마치 선심을 쓰는 마냥 말했다.



“만지는 것까지 만이야.”



“알았으니까 빨리.”



나는 누나의 파자마 위로 가슴을 만졌다. 얇은 파자마는 젖꼭지의 느낌을 생생히 전달해주었다. 파자마의 실크느낌이 좋아 나는 젖꼭지를 사정없이 문질러줬다.



누나는 내 팬티를 벗기려했고 나는 엉덩이를 들어 협조해주었다. 아직 만지는 단계에서 벗어난 건 아니니 얼마든지 괜찮다고 내 자신을 속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도 바로 누나의 파자마를 벗겼다. 누나의 몸은 오늘 처음 본 것이 아니었지만 흥분감을 전해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누나는 내 입술을 덮으며 키스를 청해왔다. 키스는 가슴과 자지를 만지는 것보다 훨씬 덜한 스킨십임을 나 스스로에게 강조하며 나는 누나의 혀를 받아들이며 키스에 열중했다.



이제는 날 설득하는 과정도 생략하기에 이르렀다. 키스를 하는 와중에 나는 누나의 보지에 손을 가져가서 보지구멍 주위를 만진 것이다. 그리고는 촉촉이 젖은 보지구멍에서 손가락에 보짓물을 듬뿍 묻혀 보지 전체에 골고루 발라주었다.



부드러워진 보지를 나는 간질이듯 문질렀고, 누나는 키스를 하면서 침과 함께 신음소리도 같이 내 입안으로 넣어주었다.



“하자.”



누나의 달콤한 속삭임에 하마터면 나는 완전히 이성을 잃을 뻔했다. 하지만 그 순간 누나의 얼굴에서 엄마의 얼굴이 보이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안 돼.”



“한 번만 하자.”



“안 된다니까.”



“제발 한 번만. 응?”



누나가 계속 조르니 단호했던 내 마음이 조금은 흔들렸지만 삽입까지는 절대 할 수 없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난 타협점을 찾아 내놨다.



“그럼 입으로 해줄게.”



난 누나의 보지로 입을 가져가서 자지를 넣는 것보다 더 좋을 수 있도록 온갖 정성을 다해 빨아주었다. 누나는 내 정성에 감복했는지 걷잡을 수 없는 신음소리로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하아…… 어떡해…… 하아…… 좋아…… 하앙…… 근데 더 넣고 싶어졌어……”



“내가 입으로 느끼게 해줄 테니까 기다려봐.”



“하앙…… 네 자지 줘…… 하앙…… 나도 해줄게……”



난 누나에게 내 자지를 물려주고 누나의 보지를 계속 빨아주었다. 누나가 내 자지를 빨아주자 나도 누나와 같은 마음이 생겼다. 자지를 보지에 담그고 싶어진 것이다. 누나가 빨아주면 빨아줄수록 그런 마음은 더욱 커져갔다. 시간이 지나자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누나의 보지에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나의 입에서 내 자지를 빼고 누나의 보지에 자지를 넣으려고 자세를 잡았다. 누나는 다리를 활짝 열어 보지를 보여주었다. 난 자지를 보지에 가져가 클리토리스를 비볐다.



“하아…… 빨리 넣어줘……”



난 누나가 그토록 바라는 일을 하려했다. 보지에 자지를 넣기 위해 내 자지를 보지구멍에 맞춘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난 또 누나의 눈을 본 것이다. 엄마가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의 이성이 다시 한 번 본능을 막아내어 허리에 힘을 주지 못했다.



난 누나의 옆에 벌러덩 누웠다.



“삽입은 아닌 거 같아. 더더군다나 술기운으로 이러는 건 정말 아닌 거 같아.”



누나는 짜증으로 온 얼굴을 뒤덮고는 내게 말했다.



“야, 장난해? 다 달궈놓고 뭐하는 짓이야?”



“어쩔 수 없잖아. 우린 남매야.”



“우린 어차피 남매의 도를 넘었어.”



“그렇다고 끝까지 갈 수는 없어. 거기까지 가면 돌아오지도 못 해.”



“몰라. 난 지금 당장 하고 싶어.”



누나는 내 몸 위로 올라와 내 자지를 잡고 앉으려했지만 나는 얼른 몸을 피했다. 겨우 삽입은 면할 수 있었다. 난 누나를 밀쳐내며 말했다.



“안 되겠어. 나 내 방 가서 잘래.”



난 침대에서 내려와 내 옷가지를 챙겨 누나의 방을 나와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문을 잠그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의 결정은 옳았던 것 같았다. 이번 한 번 뿐이라고 하더라도 분명 누나와의 관계가 어떻게든 변할 것이 분명해보였기 때문이었다.







* * *







극장 앞에서 팸플릿을 보며 어떤 영화를 볼까 고르고 있었다. 시은이는 영화 보는 게 신이 났는지 마냥 들떠 있는 모습이었다.



“이거 재미있다며?”



시은이가 들어 보인 건 멜로물의 영화였다. 전에 소연이가 보자고 했으나 남녀 주인공이 맘에 들지 않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던 영화였기에 다른 걸 봤었다.



“뭐…… 그렇지. 평은 괜찮은 거 같더라.”



“왜? 넌 재미없게 봤어? 소연이는 되게 재미있었다던데…….”



“소연이가 봤대?”



“응. 너랑 본 거 아니었어?”



처음 듣는 얘기였다. 소연이가 영화 보러 간다는 얘기를 해준 적이 없었다. 매일 만나지는 못했지만 만나지 않는 날에도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통화를 했었는데 영화 봤다는 얘기를 한 적도 없었다. 비위가 상했지만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보기 싫다고 했더니 친구랑 봤나봐.”



“그래? 이거 보기 싫어?”



“아니. 이거 보자. 사람들이 재미있다니까 보고 싶어.”



무슨 심보로 그랬는지 내 마음과 전혀 상관없는 얘기가 나왔다. 소연이에게 보기 싫다고 한 영화를 시은이와 보는 것으로 뒤틀린 심산을 표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난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시은이와 함께 있는 동안 누구보다 유쾌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다.



영화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또한 안중에도 없었던 배우에게 큰 매력을 느끼게 해주었다. 남자 배우도 열연으로 호감이 생겼지만, 특히 여자 배우가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외모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었음에도 사랑스러움을 한껏 느낄 수 있는 표정과 행동들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어땠어? 괜찮았어?”



“기대 이상이었어. 오랜만에 정말 재미있게 봤어.”



“너 여배우에 완전 넋이 나가있더라.”



“아니야. 영화에 몰입한 거야. 그 여자보다 훨씬 예쁜 시은이가 옆에 있었는데 그럴 리가 있어?”



“웃기셔. 내 얼굴 한 번 안 봐놓고는.”



“원래 내가 영화 볼 땐 영화만 봐. 넌 내 얼굴만 봤구나?”



“아니거든요. 나도 영화만 봤거든요.”



귀여운 표정의 시은이 얼굴을 난 살짝 꼬집어주었다.



“누가 이렇게 귀여운 표정 지으래?”



“치, 됐고, 이제 어디가?”



“응?”



“영화만 보는 거였어? 나랑 데이트할 거라며?”



그랬다. 시은이가 영화 보러 가자고 전화했을 때 나는 오랜만에 오붓하게 데이트하자고 대답했었다. 그저 시은이의 제안에 긍정의 의미로 답한 것이었기에 나는 별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시은이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잔뜩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다. 근사한 곳에서 저녁을 먹을까 생각해봤지만 시간이 일렀다.



“커피 마실까?”



“영화보고 커피마시는 게 오붓한 데이트야? 만날 때마다 마시는 게 커피면서…….”



시은이는 작은 목소리로 투정부렸다. 그 순간 난 불현 듯 괜찮은 데이트 장소가 떠올랐다. 소연이랑 가려고 봐두었던 곳인데 시은이랑 가게 될 줄은 몰랐지만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에는 안성맞춤일 것 같은 곳이었다.



“그럼 와인 마시러 갈까?”



“지금? 대낮에?”



“응. 내가 와인 마시기 좋은 데 하나 알아봐뒀지.”



“그럼 이따 저녁에 가.”



“아냐. 여긴 지금 가야 돼. 가자.”



시은이는 반신반의하며 날 따라왔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커플스파 앞이었다.



“스파? 와인 마신다며?”



“응. 여기 와인도 주고 마사지도 해줘.”



“정말?”



시은이의 반응이 처음 가보는 커플스파에 대한 설렘을 더 크게 만들었다. 눈이 초롱초롱해져 잔뜩 기대하는 눈빛의 시은이를 보니 난 얼른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람이 별로 없었는지 우리는 잠깐 기다렸다가 각자의 탈의실로 들어갔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는 복도로 나갔다. 가운을 입은 채로 시은이를 마주했는데 왠지 시은이가 야릇하게 보였다.



“그 눈빛은 뭐야?”



“넌 가운만 입어도 예쁜 거 같아서.”



“이상한 생각했나보네.”



“아니야!”



시은이는 홱 돌아서 직원을 따라갔고, 난 그 뒤를 졸래졸래 따라갔다.



“우와, 진짜 예쁘다.”



직원이 열어준 문 안을 본 시은이는 감탄을 금치 못했고, 난 궁금하여 고개를 내밀어 들여다보았다. 스파를 본 순간 난 시은이가 감탄을 하며 눈을 반짝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은한 조명과 촛불이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었고, 욕조 주변을 장식하는 나무와 장식품이 귀족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게다가 욕조 위에 띄워진 꽃잎들은 로맨틱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정말 예뻐.”



“맘에 들어?”



“응. 좋아. 진짜, 진짜 좋아.”



“이 정도면 오붓한 데이트 맞지?”



“평생 잊지 못할 데이트야.”



시은이는 감탄하며 둘러보고 있을 뿐 욕조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가운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놓으며 말했다.



“들어가자.”



“카메라 가져올 걸 그랬다. 지금 핸드폰이라도 가져올까?”



“다음에 또 와서 찍어.”



“또 데려와줄 거야?”



“우리 시은이만 원한다면 언제든지.”



“약속한 거야!”



“알았어. 이제 가운 벗고 들어가자.”



시은이도 가운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두었다. 나는 상의까지 벗고 있었는데 여자는 민소매까지 제공해주었는지 옷을 입고 있었다. 당연한 거지만 왠지 모르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시은이와 나는 온기 가득한 물속에서 따뜻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거기에 와인을 곁들이니 분위기는 더욱더 녹아내리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데를 알았어?”



질문을 하는 시은이의 눈빛이 약간은 불안해보였다. 어떤 불안감인지 알 수 있었다. 이곳이 시은이만을 위한 곳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너랑 오붓한 데이트하려고 여기저기 물어봤었어.”



“정말?”



“응. 들어보니까 우리랑 제일 잘 어울리는 곳 같아서 왔지.”



시은이는 내 품에 안겨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네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을래. 그것만으로도 난 지금 많이, 많이 행복해. 더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네가 지금처럼만 내 옆에 있어준다면 널 좋아해서 생기는 아픔쯤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을 거 같아.”



시은이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해줄 수 없는 내가 미안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도 모르는 터널로 들어가려는 시은이를 붙잡지는 못할망정 긴 여정의 힘이 되라고 작은 등불을 챙겨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은 더욱 커졌다.



낭만적인 분위기는 시은이가 물장난을 치며 깨졌다. 시은이와 나는 서로에게 물장구를 치며 놀았고, 서로를 물에 빠뜨리려 안간힘을 썼다. 신체접촉이 잦다보면 의도치 않던 곳도 만지게 되는 법, 난 시은이를 안고 물속에 빠뜨리려다가 시은이의 가슴을 움켜쥐게 되었다. 재빠르게 다시 놓았지만 시은이는 눈을 흘기며 날 마구 때렸다. 난 헤벌쭉 웃으며 시은이의 손을 다 막아냈다.



어색해질 수도 있었던 우리의 상황은 웃음으로 끝났다. 다행이었다. 시은이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면 우리가 다시 웃을 수 있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한바탕 물장난을 치고 나서 우리는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침대가 놓여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온돌방에 요가 깔려 있어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시은이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의아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우리는 요 위에 누워 얼굴 마사지부터 받았다. 마스크 팩도 씌워 줬는데 조금 민망했다. 마스크 팩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가끔 누나가 해줬기에 같이 붙이고 텔레비전을 보며 뒹굴 거렸던 적도 꽤나 있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시은이에게 보이고 있다는 생각이 날 부끄럽게 만들었다. 다행인 것은 내가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감출 수 있다는 것이다.



시은이와 나는 서로를 쳐다보며 웃었다. 웃음 속에 시은이도 나와 비슷한 감정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어서 또 한 번 시은이가 정답게 느껴졌다.







* * *







소연이를 만나려고 집에서 나왔는데 지연이 누나를 만나게 되었다. 최소한 방학이 끝날 때까지는 우연이라도 만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지연이 누나를 우리 집 앞에서 보게 된 것이다. 전화 한 번 없었던 지연이 누나가 이렇게 불쑥 집 앞에 나타나서 나는 적잖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쩐 일이야?”



“너한테 할 말 있어서 왔어.”



“우리 얘기할 게 남았어?”



“응.”



지연이 누나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다른 데로 가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주위를 슬쩍슬쩍 보며 머뭇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까지 하며 지연이 누나의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소연이를 만나기 위해 달려가기도 빠듯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빨리 얘기해.”



“어디 가서 얘기해.”



“나 바빠. 지금도 늦었으니까 용건만 빨리 얘기해.”



“혹시나 오해할까봐 미리…….”



“나 늦었다니까. 본론만 말해.”



지연이 누나의 말을 내가 싹둑 자르자 지연이 누나는 기분이 나쁜지 날 노려보았다.



“나 임신했어.”



“뭐? 임신이라고 했어?”



“어.”



지연이 누나의 짧은 대답은 내 가슴 속에서 긴 시간 동안 울렸다. 나는 말을 잃었다. 이대로 영영 말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게 오히려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거짓말이지?”



“사실이야.”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헤어진 여자에게서 내 아기를 가졌다는 얘기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듣더라도 어린 나이였기에 당황스러울 것 같은데 그 상대가 헤어진 여자라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얘기였다.



“나 붙잡으려고 그러는 거지?”



“부정하고 싶어도 사실이야.”



“아니라고 해.”



나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이기에 믿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지연이 누나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난 지연이 누나에게 소리쳤다.



“아니라고 하라고! 맞아도 아니라고 해!”



여전히 지연이 누나는 침묵했고, 나는 정신 사납게 갈팡질팡하며 생각하려 애썼다. 이성을 찾고 싶은 마음까지도 없었다. 어떤 생각이든 하길 원했지만 머리에 떠오르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집에 가. 나 못 들은 걸로 할 테니까 그냥 가.”



지연이 누나는 망부석처럼 서있었다. 대신 내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앞으로 걸어갔다. 난 지연이 누나 얘기를 못 들은 걸로, 지연이 누나를 못 본 걸로 하고 가던 길을 마저 가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내 다시 지연이 누나 앞에 서있는 나였다.



“다시 물어볼게. 진짜야?”



“응.”



화가 났다. 한심했다. 역겨웠다. 이 모든 게 전부 나에게 향한 감정이라는 것이 더 내 가슴 속을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너 지금 거짓말 하는 거야. 나 붙잡으려고 그런 거야. 그치? 아니야? 그럼 왜 이래? 진짜 임신했어도 조용히 지웠어야지!”



지연이 누나는 내 말에 분노의 눈길을 보냈지만 난 그 순간 한 줄기 빛을 발견했다.



“그래. 지우면 되는 구나. 가자. 당장 지우러 가.”



난 지연이 누나의 손목을 잡고 가려했으나 지연이 누나가 거세게 뿌리쳤다.



“왜? 왜 안 가? 돈 안 가져왔어? 나 돈 있어. 뽑으면 돼. 빨리 가!”



다시 한 번 난 지연이 누나의 손목을 잡으려했지만 내 손은 허공을 맴돌았다.



“장난해? 낳을 생각이야? 아니지? 아닌 거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생각을 가지는 건 아니겠지?”



난 실성한 듯 계속해서 주절주절 댔지만 지연이 누나는 말 한마디 없이 날 노려보며 눈물을 글썽일 뿐이었다.



“아, 너 돈 필요해서 왔어? 임신했다고 거짓말하고 돈 받아내려고? 진작 얘기하지. 그랬음…….”



지연이 누나의 손은 매서웠다. 내 뺨은 얼얼했지만 이성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이성이 돌아오길 원하지도 않았다. 감정적으로라도 이 일을 어떻게든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미친 새끼.”



그랬다. 난 미친 새끼였다. 그러니까 미친 새끼의 자식은 낳지 말아주길 원했다. 그런 생각을 갖지 않길 바랐다.



“내가 잘못 짚었어?”



당연히 잘못된 질문이었다. 지연이 누나가 돈이 없어 내게 찾아올 정도의 가정환경은 아니었다. 그 정도 돈은 지연이 누나의 수중에 있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랬길 간절히 바랐기에, 티끌만큼의 희망을 갖고 있기에 내 질문에 후회가 없었다.



“너 같은 새끼가 내 아기의 아빠란 게 수치스러워.”



“누가 아빠야? 그래, 말 잘했다. 내가 그 새끼 아빠는 맞는 거야? 네가 나하고만 한 것도 아니잖아. 진원이 놈 새끼일 수도 있고, 너 바람도 났었잖아. 바람 폈던 놈 새끼 아니야?”



지연이 누나는 다시 한 번 내 뺨을 갈겼다. 뺨을 맞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면 얼마든지 맞아줄 수도 있을 거 같았다.



“왜? 정곡을 찔리니까 손이 절로 올라와? 너도 누구 애인지 확신 안서잖아.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애새끼 낳을 생각하지 말고 당장 지워!”



내 뺨은 지연이 누나의 북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다행인지 더 이상 맞지는 않아도 될 거 같았다. 지연이 누나는 내 뺨을 한 번 더 때리고는 돌아서서 걸어갔기 때문이다. 난 지연이 누나를 잡아야한다는 생각 따위는 들지 않았다. 그저 지연이 누나를 앞으로 평생 다시 볼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지연이 누나는 이미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소연이에게서 전화가 왔지만 나는 전화를 꺼버리고 멍하니 서있었다. 내게 주어진 과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너무 막막해서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오늘 지연이 누나와의 만남을 통해서 최소한 나는 아기를 낳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전달했다는 것에는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는 일이었다. 지연이 누나도 나도 아직 한참 어린 나이이기에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만들어진 아기를 위해서 그 모든 걸 포기한다는 것은 정말 비현실적인 생각인 것 같았다.



물론 내 입장에서 그렇지만 지연이 누나 입장에서는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슨 고흐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귀를 자르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꿈과 삶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을 저질러버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나는 꼭 믿고 싶었다.







* * *







내가 소연이를 바람 맞혔다는 것은 아침에 핸드폰을 켠 다음에야 알게 되었다. 핸드폰은 쉬지 않고 메시지 도착 알림을 울렸고, 대부분이 소연이였다. 어떤 건 걱정이 가득 담겼고, 어떤 건 잔뜩 화가 나있었다. 또 어떤 건 무미건조한 것도 있었다. 그 중 가장 인상에 남는 메시지는 지금 이 시간을 내가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담긴 메시지였다.



난 바로 소연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소연이는 아직 잠을 자고 있는지 받지 않았다. 두어 차례 더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아 기다려보기로 했다.



밤을 꼴딱 새웠지만 나는 피곤하지 않았다. 대신 뇌는 매우 지쳐있는 기분이었다. 그럴 만도한 게 나는 잠시도 쉬지 않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었다. 똑같은 생각만 수천만 번도 더 넘게 한 거 같았다.



식사를 하라는 엄마의 부름도 거절하고 난 깊은 고뇌에 빠져 헤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고민의 수렁에서 꺼내준 건 소연이의 전화였다. 난 최대한 미안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소연아, 이제 일어났어?”



[응.]



“어젠 내가 정말 미안했어.”



[괜찮아. 나 할 말 있으니까 이따 볼래?]



다행이었다. 단단히 삐쳐 안 본다고 하면 어떡하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응. 언제 볼까?”



[점심때쯤 보자.]



“알았어. 내가 너의 집 쪽으로 갈게.”



[그래. 오면 전화해.]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소연이는 전화를 끊었다. 삐쳐있긴 한 거 같았다. 내가 지금 소연이를 풀어줄 여유도 경황도 없지만 두 가지 문제가 날 괴롭히는 것 보다는 하나라도 먼저 해결하는 편이 나을 거 같아 반드시 풀어줘야 했다.



하지만 소연이와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지연이 누나에 대한 생각만이 나를 지배했다. 똑같은 생각만 되풀이하다 소연이를 만나러 가야 할 시간이 되어 나갔다.



소연이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토라져있거나 화를 낼 줄 알았는데 너무 담담해서 더 미안한 마음이었다.



“간단히 얘기할게.”



“복잡하게 얘기해도 돼.”



농담을 던지고 아차 싶었다. 내가 지금 이래도 되는 상황이 아닌데 얼떨결에 습관적으로 나왔던 것이다.



“우리 헤어져.”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었다. 요즘 내게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게 원망스러웠다.



“어제 일 때문이야? 그건 내가 설명할게.”



“아니. 어제 뿐만이 아니야. 넌 내가 필요할 때마다 옆에 없었어.”



“미안해. 앞으로 잘할게. 그러니까 화 풀어.”



“앞으로는 그럴 일 없을 거야. 나 다른 남자 있어. 내가 필요할 때 너 대신 내 옆에 항상 지켜준 사람.”



충격적이었다. 소연이가 다름 아닌 소연이가 내가 아닌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게 누군데?”



“그것까지는 알 필요 없잖아.”



“그 정도는 내가 알아도 되지 않아?”



소연이는 망설이다가 조용히 읊조렸다.



“지철이야.”



경계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런 의미의 경계는 아니었다. 난 소연이의 마음을 믿고 있었기에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줄 알았던 것이다.



“거짓말이지? 너 지철이한테 마음 없었잖아.”



“널 만나면서도 난 혼자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 너랑 사귀기 전보다 더 외로움을 느낀 적도 많았고. 근데 그때마다 지철이는 내 옆에 있어줬어.”



“그건 힘들 때 잠깐 의지한 거뿐이잖아. 이제 내가 힘들게도 안 할게.”



“늦었어. 난 지철이가 좋아.”



“그건 사랑이 아니야. 우정이랑 다를 게 없는 거야.”



“사랑이 별 거야? 너랑 사귀면서 확실히 알았어. 함께 하는 게 사랑이라는 거.”



“우리도 함께 한 시간 많았잖아.”



“네가 필요할 때만 그랬겠지. 정작 내가 필요할 땐 한 번도 없었잖아.”



“소연아, 내가 정말 잘못했어. 내가 이렇게 빌 테니까 한 번만 용서해줘.”



“이러지마. 어차피 되돌릴 수 없어. 내 마음은 이미 네가 아니야.”



소연이는 대사라도 생각하고 나온 듯 무미건조하게 읊었다. 난 힘이 빠져 대답할 기운도, 설득할 자신감도, 매달릴 용기도 상실했다. 어쩌면 현재의 내 복잡한 상황이 너무 힘들어 소연이에게까지 쏟을 힘이 없었을 수도 있었다.



“그동안 미안했어. 잘 지내.”



난 뒤도 안 돌아보고 소연이에게서 멀어졌다. 이제 내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숨 막히게, 정신없이 살아온 시절은 모두 지나고 홀로 남겨진 것이다.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혜림이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그래도 내게 남은 건 날 사랑한다던 섹스파트너가 있었던 것이다.



“응.”



[윤호야, 지연이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거 같아.]



난 덜컥 겁이 났다.



“무슨 소리야?”



[모르겠어. 아무튼 빨리 지연이 집으로 가봐. 빨리!]



난 전화를 끊고 달렸다. 달리는 동안 온갖 무서운 생각이 다 들었다. 큰길로 나가 택시를 잡아타니 갖가지 생각들이 더 나를 괴롭혔다. 혹시 아기가 잘못된 것이 아닌지, 지연이 누나가 나쁜 마음을 먹은 것은 아닌지, 그것도 아니라면 아기를 가진 사실을 부모님이 알게 된 것은 아닌지, 아기와 관련되어 할 수 있는 생각은 모두 다 했다고 할 정도로 많은 생각들이 날 가만두지 않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가도 모자랄 판에 지연이 누나의 집 근처에 거의 다 와서 차가 막혔다. 앞에 사고가 났는지 차는 움직일 생각을 않기에 나는 택시비를 던져주고 미친 듯이 달렸다.



심장이 멎을 만큼 숨이 가빠왔지만 내가 여기서 멈춘다면 다른 누군가의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아 터질 때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힘들게 달려 지연이 누나의 집까지 십여 미터를 남기고 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앞으로 나뒹굴었다. 뒤통수에 들이닥친 강한 충격은 다시 일어서려는 내 다리에 힘을 전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오토바이 한 대가 점점 멀어졌다.



그래도 난 여기서 멈출 수가 없었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희생당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안간힘을 써서 기어갔다. 하지만 점점 골목길은 흐릿해지고 있었다.



길었던 대학교에서의 한 학기가 머릿속에서 상영되고 있었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영상들이었지만 난 빠짐없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미소 지을 수 있었다. 내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그 속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눈물도 흘릴 수 있었다. 내게 가장 슬펐던 순간도 그 속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머리에서 오는 통증도 참아낼 수 있었다. 지금보다도 더 아픈 순간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움직일 수는 없었다.



점점 흐려지던 영상이 마무리되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 눈은 분명 떠져 있는 거 같은데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더 이상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칠흑 같은 어둠으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던 내 눈에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온통 하얘서 아무 것도 구분이 되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자 하얀 세상에 순백의 천사가 보였다. 내가 죽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것도 잠시 나는 다시 어둠 속에 잠겼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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