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밤의 판타지 - 상편
한 여름밤의 판타지(상편)
유난히 무덥고 습기찬 밤에 작업진도가 영 부진해 나는 고역을 치루고 있다. 나는 삼류잡지에 지금 일종의 에로소설을 연재중이다. 이미 첫회에 꽤 독특한 캐릭터를 내세워 편집장도 모처럼 "다음편에 기대가 크다"고 했는데, 남녀 주인공이 막 씹을 하게되는 대목에서 자꾸 막히는 것이다. 요즘 인터넷에 난무하는 야설과는 달리 좀 특별한 상황을 만들려는데 다시 읽어보면 너무 유치하고 어색해서 딜리트 하기를 몇번, 짜증만 나는데 담배조차 떨어졌다.
시계를 보니 2자에 두바늘이 딱 겹쳐 있는 것이 새벽 2시11분 쯤이다. 이 시각에 담배를 사려면 24시간 편의점에 가는 수밖에 없다. 우리 동 앞에서 나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아파트만 밀집한 곳이라 몇군데 불빛이 보이지만 대부분 깜깜했고 주위는 고요하다. 나는 우리단지의 담을 넘어 샛길을 이용하기로 했다.
정문이나 뒷문으로 편의점을 가려면 족히 10분은 걸리지만 담을 넘어 마을공원을 질러가면 4~5분 거리기 때문이다. 담이래야 얕은 철책인데 그나마 통학하는 아이들이 항상 두세개는 뿌러뜨려 놔 옷을 찢길 염려 없이 쉽게 넘을 수 있다. 담을 넘어 공원에 몇발짝 들여 놓았을 때 갑자기 눈 앞에 빛을 발하는 물체가 나타났다.
나는 그것이 UFO라는 것을 알았다.
그 물체는 스필버그의 'E.T'나 '우주전쟁' 같은 영화에 나오는 비행접시처럼 거창하거나 요란하지는 않았다. 그저 반투명의 커다란 공 같은 것이 밭침대나 개스 분사 같은 것도 없이 사뿐히 내 눈앞에 내려 앉은 것이다. 평소에 나는 UFO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나 사전 지식도 없었지만 어떻든 내가 실제로나 영화 같은데서도 본 적이 없기에 그렇게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그 안에서 무엇인가 나오고 있었다. 그것도 영화에서처럼 문이 열리고 트랩을 밟으면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벽을 뚫고 소리없이 나타나는 귀신처럼, 그렇게 움직였다. 나도 호기심에 그쪽으로 닥아 갔다. 가까워 지는 그 물체의 윤곽이 점점 들어나자 나는 깜짝 놀랐다.
아! 그는 바로 배아줄기세포의 세계적 권위자, 대한민국의 최고과학자 1호인 황우석교수 아닌가!
"황교수님, 이곳에는 어쩐 일로 ......?"
나는 우선 깍듯이 인사하며 알은 체를 했다. 그를 직접 만나거나 먼 발치에서라도 본 적은 없지만, 이제 세계적 명사가 되고 TV나 신문에 그토록 자주 등장한 황교수를 몰라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 당신은 누구요? 착지할 때는 아무도 없었는데 ......?"
"네. 저는 박민수라고 합니다."
나는 다시 한번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남자들이 통성명할 때의 예의로 손을 내밀었다. 황교수는 한번 나의 아래위를 훑어보고 마지 못한 듯 내 손을 잡았다.
내가 손을 좀 방정맞게 흔들자 "하여튼 반갑습니다."라며 TV에서 본 것처럼 그 탤런트 뺨치게 잘 생긴 얼굴에 매력적인 미소를 잠깐 띄웠다.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그런데 이곳엔 어쩐 일로 ......?"
나는 같은 질문을 되풀이 했다. 그토록 유명한 분이 이토록 늦은 시각에 이런 장소에 불쑥 나타난 것도 궁금하거니와, 혹 내가 무슨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돕고 싶어서였다.
"자동장치 이상으로 불시착을 하게 됐죠. 요즘 정비공들은 너무 나태하고 책임감이 없어서 ......"
황교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내게 물었다.
"당신 여기 한동안 있을 수 있죠? 우선 안전조치를 취해야 되니까 ......"
"물론입죠. 뭐 시키실 일이라도 ......?"
황교수는 내 말을 무시한 채 리모콘 같은 조그만 기계를 꺼내 손으로 조작하자 투명한 막같은 것이 모락모락 일어나더니 마치 바람을 넣는 풍선처럼 커지면서 우리와 UFO 마저 완전히 감쌌다. 그래도 투명해서 주위의 풍경은 그대로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 투명한 막이 바깥과는 우리를 완전히 차단해주는 보호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것은 공상영화에서 얻은 지식이다.
일단 외부와 차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나도 이제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우선 황우석교수가 그렇게 체격이 작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얼굴은 나와 비슷, 오히려 크다고도 할 수 있는데 키는 내 어깨 높이밖에 안돼 기껏해야 초등하교 2~3학년짜리 정도다. 몸집도 가늘고 손은 여자손처럼 작고 부드러웠다. TV로 얼굴만 봐서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우선 친구들 만나면 자랑삼아 이야기할 꺼리가 생겼다.
그리고 우리의 발쪽에는 이상한 물체들이 어른거렸다. 모양은 수박, 아니 크기로 치면 멜론 정도의 공 같은 것이 톡톡 튀기도 하고 뒹굴기도 하면서 움직인다. 대충 30개가 넘는 것 같은데 그중 몇개는 마치 조개가 입을 벌리듯 갈라져 속이 조금씩 보이기도 했다. 저 혼자 움직이고 벌어진 속도 꿈틀거리는 것으로 보아 살아있는 생명체 같았다.
"교수님, 이것들이 뭐죠?"
나는 신기해서 또 먼저 질문했다.
"당신들 같은 인간, 다만 미래의 인간이오."
"네에?"
나는 다시 물으면서 황교수가 농담을 하거나 나를 놀리지 않나 살폈다. 그러나 그는 전혀 웃거나 시치미 떼는 표정이 아니었다. 저명한 과학자가 이렇게 근엄한 표정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진실인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
황교수가 아까 사용했던 리모콘을 조작하자 내가 쓰는 휴대폰의 액정화면 같은 것이 나타났고 그것을 보며 "지금부터 3002년 하고 278일 7시간 5분 45초의 미래가 되는군."이라고 했다.
"그럼 저것이 타임 머신 ......?"
내가 놀란 표정을 짓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 나도 좀 감이 잡혔다. 황우석교수가 미국, 영국 같은 선진국과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더니 세계를 주름잡는 것뿐 아니라 이렇게 과거와 미래도 넘나들고 있구나! ......하지만 저런 멜론덩어리 처럼 생긴 것을 '당신들 같은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머리를 갸우뚱하다 번쩍 떠 오르는 깨달음이 있었다.
"아, 배아복제 줄기세포 ......!"
"그렇소. 그 줄기세포 방식을 적용했지."
"그럼 이것들은 질병 치료에 ......?"
"뭐요? 우리는 인간을 치료하거나 다른 어디에나 활용하지 않아요. 다만 관리할 뿐이지."
"그렇다면 저 복제인간들은 뭣 때문에 만들었죠?"
"만들다니 ......? 우리는 새로 인간을 만들지 않았소. 이건 지금의 시점에서 보자면 미래의 모든 인간이오. 다만 진화를 줄기세포 방법으로 좀 앞당긴 것 뿐이지."
"그럼 저 괴물처럼 생긴게 3천몇년인가 그 미래의 인간 모습이란 말인가요?"
"그렇소."
황교수는 여전히 근엄한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말도 진실일텐데 이제 나는 더 이상 추측이나 깨달음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질문도 못한 채 수치감과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저런 괴물들이 나의 후손, 아니 이 지구의 주인인 인간의 모습이라니 ...... 그 순간 나는 또 하나 간과했던 사실을 떠 올렸다.
황우석교수의 연구성과가 모든 사람의 경탄과 환영을 받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 부작용을 우려해서 몇몇 나라는 줄기세포 배양을 법으로 금지했고 어떤 종교단체는 정식으로 비난성명을 내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 우려가 비록 미래라지만 끝내 이런 비극적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여보시오, 황교수! 당신이야말로 현대의 프랑켄슈타인이었군! 오만한 인간이 신의 영역을 침범해서 결국 이렇게 미래를 망쳐 놓고 말았단 말야! 이걸 어떡할거야? 당장 되돌려 놓든지, 아니면 내가 인류의 이름으로 당신을 손 봐 주겠어! 참, 이런 인간에게 우리나라는 최고과학자 칭호까지 주다니 ...... "
나는 분노에 치를 떨면서 황교수에게 삿대질을 했다. 그의 얼굴은 준수하고 근엄했지만 초등학생 같은 체격을 보니 힘으로는 얼마든지 자신 있었다.
내 태도가 돌변하자 황교수도 기분이 나쁜 모양이었다. 그 큰 눈을 더욱 크게 떴다가 나를 노려보며 잔뜩 인상을 쓰고 있다. 그의 이런 표정을 국민들은 TV같은데서 절대 못봤을 것이다.
"아니, 이 사람이 왜 갑자기 흥분해서 야단이야? 신의 영역은 뭐고 미래를 망쳤다는 것은 또 무슨 말이야? 이런 미래는 바로 당신 같은 인간들이 원해서 선택하고 진화된 당연한 코스인데 ......?"
"이봐요, 황우석씨! 유식하다고 말재간 부리지 마시오! 만물의 영장인 인류의 어떤 미친놈이 저런 괴물로 변하기를 스스로 원한단 말이오? 바로 당신처럼 건방진 과학자들이 이 세상을 망친거지.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에다 온갖 공해를 유발시키는 물질들로 지구를 더럽힌 그 과학자 새끼들처럼......"
"이 친구가 점점 알 수 없는 좆같은 소리를 하네. 내가 왜 황우석이고 세상을 망쳤다는건 또 무슨 개좆 같은 소리야? 더구나 누가 괴물이야. 지금 자네도 스캔해보니 저런 식으로 바뀌기를 동경하고 집착해 왔지 않나?"
인류의 한사람으로써 흥분한 내가 욕설을 내뱉자, 황교수도 점점 화가 나는지 언성이 높아 지고 상소리도 해가며 표정도 험악해 졌다. 나야말로 그의 말을 점점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럼 황우석교수님이 아니세요?"
"물론! ...... 내가 왜 황우석이야?"
"그런데 왜 처음부터 내가 황교수님이라고 불렀는데 가만히 있었습니까?"
"나 원 참! 당신네 인간들은 아무한테나 사장님, 사모님 같은 말을 잘 하잖아? 나는 황교수란 말도 처음 만난 상대에 대한 존칭인줄 알았지."
"아, 그건 죄송합니다. 황우석교수님하고 얼굴이 너무 닮아서요."
나는 내 실수에 대해서는 즉각 사과했다. 그만큼 나는 앗싸리한 놈이다. 사실 체격이 그렇게 작은 것으로도 미리 짐작했어야 할 일이다.
"하기야 얼굴은 닮았겠지. 나도 같은 표본을 사용했고 황우석도 함께 일하는 동료니까 ...... 하지만 그 친구는 나보다 2950여년 먼저 파견됐거든."
"파견이라니 ...... 어디서요?"
"에덴!"
그는 짤막하게 말했다.
"네? 그 성경에 나오는 에덴동산이요?"
"글쎄, 동산이란 말은 인간들이 붙인거지. 우리는 그런 형체나 규모같은 것의 개념이 없으니까 ......"
"그럼 황우석교수님도 에덴에서 ......"
"물론, 우리 동료라니까. 자네는 황우석도 자네같은 인간인줄 알고 있었던 모양이로군?"
어느새 나는 존댓말을 쓰는데 그는 반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것으로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너무나 궁금하고 이해못할 일들 투성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나는 이 남자와 꽤 많은 대화를 나누었건만 내가 확실하게 알게된 것은 그가 황우석교수가 아니라는 것 뿐이다. 그밖에는 그가 하는 말의 어느것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뿐 아니라 더욱 혼란만 늘어날 뿐이다.
"그렇다면 댁 ......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내 원래 이름은 치치카토, 에덴의 동물담당 007번이지. 원한다면 ID카드를 보여줄 수도 있어. 하지만 인간과 통하는 이름은 없다네. 지금 내가 활동하는 시대에는 인간에게 내 이름을 소개할 필요도 없으니까."
"그런데 미래의 인간이 왜 이렇게 흉칙하고 조그맣게 변한거죠? 선생 말씀으로는 진화라고 하지만 ......"
"자네는 용불용설도 모르나?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와 있다던데......"
"다윈의 용불용설이요? 물론 알죠. 그럼 다윈도 에덴에서 ......?"
"아니야. 찰스 다윈은 그저 페스트라, 인간들 말로 하자면 선각자, 혹은 깨인자 정도지. 그러니 갈라파고스섬에서 겨우 거북이를 관찰하고서야 자연선택이니 적자생존 같은 것을 깨닫게 되지. 더구나 그의 진화론은 엉터리 투성이야. 또 내가 말한 용불용설은 슈발리에 라마르크의 학설일세."
용불용설과 다윈은 나의 착각이다. 하지만 진화론이 엉터리? ...... 그가 하는 말마다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그러니 한가지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대화를 한곳에 집중해야 한다.
"이 미래의 인간들이 용불용설과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자, 이것들을 잘 관찰해 보게."
그는 발 앞에 나뒹굴어 있는 멜론덩어리, 혹은 조개처럼 벌어지기도 한 물체들을 가르키면서 설명했다.
"현재, 그러니까 내가 관리하는 시대의 인간은 크게 코파와 히토스, 두가지로 나뉘지. 코파는 단적으로 말하자면 성적인간(性的人間)이고 히토스는 두뇌인간(頭腦人間)이야. 모두 인간 개체의 취향과 생활방식에 따라 자기들이 원하는 쪽으로만 빠른 진화를 거듭했다네. 그래서 코파는 섹스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됐고, 히토스는 사색에 빠지거나 퀴즈풀기, 게임같은 두뇌활동에만 집중할 수 있게 진화했는데 그 비율은 대충 84대 16정도야. 저기 거의 움직임이 없는 인간들이 바로 히토스야."
그는 또 인간이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저 멜론덩어리였다. 다른 것들은 조개처럼 입을 벌리고 통통 튀고 굴르기도 하는데 정말 그 히토스라는 멜론들은 거의 움직임이 없고 가끔 그 자리에서 디뚱거리는 정도였다.
"지금 저게 사색하고 게임하는 모습이라구요?"
"물론!"이라며 그는 손가락질을 해가며 덧붙였다.
"저 히토스는 지금 시간의 흐름에 대해 사색하는군. 20세기의 지구에는 '시간의 철학자'라는 헨리 베르그송이 있었지만 저 녀석은 그 이론을 두단계나 뛰어 넘었어. 그 왼쪽의 히토스는 지금 게임중이야. '스타 그래프트' 버전 73번을 하는데 거의 지고 있구먼."
"아니, 지금 나를 놀리십니까? 저렇게 눈코도 없고 손발도 없이 철학에다 멀티게임까지 한다구요?"
"자네는 사색할 때 눈코를 쓰나? 또 멀티게임은 텔레파시로 다 주고받지."
"자꾸 사람 놀리지 마세요. 나도 성깔있는 놈입니다. 정말 나를 화나게 하면 그냥 확 ...... "
나는 그가 나를 조롱한다는 기분에 선을 그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공갈을 쳤다. 그러나 그는 전혀 흔들림 없이 오히려 반격을 가해 왔다.
"자네는 원래 무식하거나 아니면 너무 건방지군. 자네들은 지금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휴대폰으로 온갖 수다를 다 떨고, 문자를 보내고, 동영상을 받아보며, 주식거래도 하면서 그래, 3000년후 자네 후손들이 그런 것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저 인간들이 자네를 봤다면 정말 놀리고 비웃을만한 일이지."
나는 당장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주춤하자 그는 내가 기가 꺾인 줄 생각했는지 설명을 계속했다.
"코파는 중성인 히토스와 달리 또 암수로 구분되지. 바로 이게 수컷 코파야."
그는 바로 발옆에 있는 것을 발로 툭 찼다. 외부 충격 때문인지 반쯤 벌어졌던 그 수컷 코파는 금방 몸을 움츠려 멜론덩어리가 되며 한바퀴쯤 굴르더니 이번에는 완전히 벌어졌다. 그제서야 나는 그 속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내 눈앞에 들어난 속살은 한가운데에 말조개의 촉수 같기도 하고 살기둥 같은 것이 스멀스멀 움직이면서 점점 커지더니 수직으로 우뚝 섰다. 그것은 영락없이 사람의 발기한 좆 형상이었다. 다만 크기는 내 좆보다 용적으로 두세배는 실히 될 것 같았다. 특히 끝의 귀두 같은 부분은 어린애 주먹만큼 크고 뭉뚱했다. 그 밑에 양쪽이 똑같이 달걀을 쭈글쭈글한 껍질에 싸 놓은 것 같은 형상은 사람의 불알을 닮았고, 주위에는 꼬불꼬불한 털이 에워싸고 있다.
"저게 남자의 생식기 ......?"
"바로 봤네. 아, 마침 자위를 하는군."
그가 빙긋 웃으며 말하기에 눈을 돌렸더니 마치 무반동포를 발사했을 때의 포신처럼 혼자 솟았다 내렸다 하더니 그 귀두가 찍찍 액체를 뿜어댄다. 저것이 생식기라면 저 액체는 정액이 틀림없다. 서너번 뿜어댄 정액은 소주잔으로 하나는 실히 되어 보인다.
"저 암컷 코파도 자위를 하려는 동작인데 ......?"
그가 가르키는 곳을 보니 역시 완전히 벌어진 그 물체는 영락없는 성인 보지를 확대해 놓은 것이었다. 아니, 그저 적당한 배율로 확대만 한 것이 아니라 야수파 화가의 붓끝을 거친 것처럼 한층 색깔이며 개성이 강조된 보지였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나도 '여성 생식기 구조'라고 의학서적에서 본 것처럼 대음순, 소음순, 음핵, 요도구, 질입구, 그 아래로 들국화 꽃잎처럼 주름잡힌 곳은 항문이라는 부분 명칭을 다 맞힐 수 있었다.
다만 내가 본 설명도나 직접 경험한 성인 보지보다 음핵은 훨씬 크면서 짙은 선홍색이었고, 대음순은 흙갈색에 부채살처럼 생긴 것이 혼자서 꿈틀거렸다. 음모도 내가 보아온 어떤 여성보다 무성했으며, 누가 건들이지도 않았는데 저 혼자서 소음순이 벌어지며 습기찬 질구의 구멍이 뻥 뚤린 것처럼 벌어졌다가 혼자 옴찔옴찔거리더니 분비액도 더욱 늘어나 일부는 흘러내리기도 했다. 그 조그만 움직임들이 일순간 정지되는가 싶더니 전체가 마치 진동으로 해놓은 휴대폰처럼 혼자 부르르 떨면서 투명한 분비액을 분무기처럼 뿜어내고는 계속 옴찔옴찔 거린다.
그 옆에는 두마리의 코파가 엉켜 있는 것도 보였다. 이제 그의 설명을 안들어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암수가 어울려 우리가 하듯 씹을 하고 있는 것이다. 두 코파는 서로 붙었다 떨어졌다 박음질을 하다 함께 부르르 떨더니 떨어진다. 수컷 코파의 좆은 정액과 암컷의 분비액으로 온통 미끌미끌한데 원상태로 돌아가는 중이라 좀 흐늘흐늘해 보인다. 암컷 코파는 질구가 옴찔옴찔하면서 방금 수컷이 싼 정액을 쿨컥쿨컥 토해내고 있었다.
그 광경은 격렬할뿐 아니라 내가 보아 온 것보다 훨씬 크고 발달된 좆과 보지의 위용 때문에 내 좆도 불끈거릴만큼 선정적이었다. 하지만 방금 내가 본 광경이 포르노 테이프의 클라이막스를 클로즈 업한 것이 아니라 전경(全景)이라는 점에서 엄청난 충격과 함께 절망감에 빠졌다.
"미래의 인간은 저렇게 그저 자위를 하거나 씹만 해댄단 말입니까?"
"보시다시피 ......" 라며 그는 빙그레 웃고 손바닥을 펴 작은 아치를 그리며 그들의 성공작을 자랑하듯 제스쳐를 해 보인다.
"얼마나 효율적이야? 바로 용불용설의 이론을 확실히 증명해 주는 모범적 모델이지. 성감대는 전부 저 안에 몰려있고, 자네 말처럼 눈코나 손발등 필요없는 부분은 모두 없어졌으니 완전히 씹질에만 몰두할 수 있지."
"아아 ......!"
나는 머리를 쥐어 뜯으며 신음했다. 가슴이 울컥거리며 눈물마저 쏟아지려 한다. 어찌 인간이 저토록 추락할 수 있단 말인가.
아, 인간이 본래부터 지녔던 위엄과 매력, 무수한 시와 노래를 만들게 했던 서로에 대한 그리움이나 동경과 환상, 환희에 몸부림치고 못 이루었을 때의 가슴 저림과 애처로움마저 한 없이 아름다웠던 그 사랑이란 것은 어디로 가벼렸는가. 불과 몇천년 후에 인간이 성게나 지렁이와 다름 없는 하등동물로 전락하다니 이것은 핵무기로 지구가 멸망하는 것보다 더욱 처참한 비극이다.
"황교수, 아니 치치카토님! 인류의 미래가 정녕 이렇게 펼쳐 진다면 이것은 너무나 엄청나고 처참한 비극입니다. 지금이라도 이런 참극을 극복하고 바꿀 방법은 없겠습니까?"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진지하게 물었다. 문득 영화 '터미네이터'도 떠 올랐다. 그 영화는 1.2.3편을 모두 봐서 스토리는 오히려 헷갈리지만, 현재와 미래가 서로 얽혀 있는중 미래에서 날아온 로보트의 도움을 받아 지구를 멸망에서 구원하는 내용이다. 그 주인공처럼 나도 미래에서 왔다는 그의 도움을 받으며 인류의 미래를 다시 설계할 수 있다면 ...... 설사 실패하더라도 기꺼이 내 목숨 하나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냉담하고 냉소적이었다.
"뭐가 비극이야? 그리고 왜 바꿔?"
비웃음을 띠우며 반문하는 그를 당장 목을 졸라버릴까, 좀 더 설득해서 도음을 받아야 하나, 분노로 피가 끓어 오르면서도 나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아무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했다.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면 나는 무척 짜증이 난다네!. 하지만 한번만 더 말하지. 이런 변화는 당신들, 바로 인간이 원하고 선택한 일이야. 그래서 용불용설의 이론처럼 인간들은 그 방향으로 계속 진화해 갔지. 물론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론이나 적자생존의 원칙도 이 진화를 뒷받침해 주지. 외부의 자극이나 영향이 없어도 우리가 계산해보니 인간은 3만년 후면 완전히 저런 모습으로 진화하게 되어 있었어. 그걸 우리는 다만 시간을 10분의 1로 줄인거야. 인간들이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지."
나는 그의 말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절대로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반박을 하려 해도 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니 별 수단이 없다. 그래도 말꼬뚜리나마 잡고 늘어지려 했다.
"외부의 자극이나 영향이 없어도 3만년 후면 인간이 저 꼴로 바뀐다고 .....? 지구의 역사나 호모 사피엔스 이후의 인류역사가 얼마나 장구한데 겨우 3만년만에 인간이 멜론덩어리가 된단 말입니까?"
"역사를 들먹이려면 우선 그렇게 옹졸하고 고정된 시각부터 고쳐야 되네. 자네도 롤러 코스터를 타 봤겠지?"
이건 또 무슨 뚱딴지? ...... 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청룡열차 같은거요?" 라고 대꾸했다.
"그래. 인류역사는 롤러 코스터처럼 오랫동안 똑딱거리며 오르막을 힘겹게 올라가서 약간의 내리막을 미끄러지다 지금 자네가 사는 시대에서 급강하하고 있는거야. 생각해보게...... 인간은 5000년 전에 설형문자를 만들었건만 천년이 더 지나서야 파피루스에다 조금 발전된 상형문자를 기록할 수 있었지. 대량 복사를 가능케 한 활자는 불과 고작 550년 전에 등장했어. 진공관 1백만개를 이어 만든 인간 최초의 컴퓨터가 발명된 것은 61년 전이야. 그런데 지금 5세대의 PC는 처리속도를 300만배, 크기는 3400분의 1로 줄였을뿐 아니라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장서를 다 보관하고도 메모리가 남네. 또 당시에는 꿈도 못 꾸었을 인터넷과 동영상 같은 기능도 갖고 있지 않나? 새처럼 공중을 날고 싶다는 인간의 소원은 3천5백년전 신화(神話) 속의 이카루스나 가능했고, 깃털을 움직여 날아보겠다는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시도는 500년 전에 실패했네. 기체역학을 응용하고 동력을 사용한 라이트형제의 최초 비행기는 102년전 12초동안 32메터를 날았을 뿐이야. 하지만 지금은 음속의 몇배나 빨리 날고, 수백명의 승객을 태우는 비행기들로 지구 상공의 항공망은 거미줄보다 더 조밀하게 엉켜있지 않나. 급강하 하면서 가속도가 붙은 롤러 코스터는 이제 중력도 무시한 채 트위스트를 추지. 미래는 그렇게 더욱 빨리 변한다네."
그가 해박한 것인지 원래 다변인지, 하여튼 속사포처럼 나의 이의제기에 대한 반박이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 예를 든 것은 모두 기계 아닙니까? 인간, 아니 생명체는 인위적 조작이 아니면 그렇게 바뀌지 않을걸요?"
"참, 답답한 사람 ......"이라며 그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부화한 올챙이의 아가미와 꼬리가 허파와 뒷다리로 완전히 바뀌는데는 종류에 따라 43시간에서 17일이먼 족하네. 아마존의 코카파리는 구더기에서 번데기를 거쳐 성충이 되는데 2시간18분이면 돼. 카멜레온이 주변 풍경처럼 보호색을 바꾸는데는 5초밖에 안걸려. 이런 것은 자체 변태라 하더라도 서식처가 바뀌면서 두더지와 펭귄이 눈과 날개를 없애는데 고작 8000년밖에 안 결렸어. 원래 도미와 비슷했던 넙치가 유영하며 사냥하는 대신, 밑바닥의 퇴적된 먹이에 맛을 들이면서 배쪽은 하얗게 변하고 눈은 등쪽으로 다 옮겨지는데도 4300년이 걸렸을 뿐이야. 물론 그 동물들은 새 환경에 편리하도록 진화된 채로 다시 몇만년을 이어 왔지만 ...... 인간은 수천년간 농경생활을 해왔지만 대부분 인간들은기근에서 헤어나지 못했지. 그러나 식량문제를 거의 해결하면서 농후음식의 섭취가 늘어나더니 최근 100년 사이에 창자 길이가 평균 1.3메터나 짧아 졌다네. 동물이나 그중 하나인 인간의 진화도 때로는 롤러 코스터의 하강 때 처럼 가속도가 붙고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방향을 틀기도 한다네."
"치치카토님. 솔직히 저는 댁이 황우석교수가 아니라는 것 말고는 하시는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두더지나 넙치가 눈깔을 없애거나 옮긴 비유와, 그토록 찬란한 문화와 문명을 이룩했던 인간이 멜론덩어리로 돌변한 것은 제 상식으로는 도저히 결부가 되지 않습니다. 좀 쉽게, 그리고 제가 알아듣도록 설명해 주실 수는 없을까요?"
"자네는 보기보다 훨씬 무식한 인간이로군. 같은 말 반복하는 것 다음으로 내가 싫어 하는 것이 무식한 상대와 대화하는 것인데 ...... 하지만 내가 본의는 아니지만 자네 구역을 침범한 꼴이 됐으니 일단은 설명을 해주지."
우리는 편하게 마주 앉았다. 의자를 당겼거나 아니, 애초에 의자 같은 것도 안보였지만 그가 앉는 자세를 취하기에 나도 따라 해봤더니 엉덩이와 등을 무엇인가 푹신한 것이 받쳐주고 있었다.
"우리가 자네같은 인간을 지구에 뿌려놓은 것이 6000년 남짓인데 그동안 인간들은 무척 다양하고 빠른 진화를 거듭해 왔네."
"인류의 역사가 고작 6000년이라고요? 에이, 그건 잘못 아셨겠죠. 네안데르탈인이나 크로마뇽인 같은 조상격 원시인들은 벌써 10만년에서 3만년 전까지 지구에 존재했다는 것을 화석들이 증명해 주고 있는데 ......?"
"아, 그것들은 말하자면 에덴의 실패작들이었네. 사실 우리의 기술수준도 완벽한 것은 아니거든. 그래서 더러 시행착오도 겪고 실패를 거울삼아 개선도 하지. 또 실패작의 폐기물은 완전히 수거해야 하는데 그전에는 그런 규정들이 잘 안 지켜졌어. 그래서 공룡이나 매머드 같은 것의 잔해들도 아직 지구에 남아 있지."
"하지만 인류는 유인원에서 원시인, 그리고 지금의 인류로 연결되어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런 연결고리는 애초에 없어. 아까도 내가 말했잖아.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엉터리라고 ...... 자네가 사는 시대의 인간 원형은 6000년 전쯤에 시작된 거야. 그때 담당이 여호와였지."
"네, 여호와? 그 성경에 나오는 천지창조의 유일신 말씀입니까?"
"천지창조? 유일신? ...... 자네도 그걸 믿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착각과 왜곡이 만들어낸 허튼 소리야. 하여튼 인간들은 거짓말도 잘 만들어 내고 속아 넘어가기도 잘 한단말야. 다른 동물은 사냥할 때나 자신이 사냥감을 모면하려 할 때 말고는 속임수를 안 쓰지."
"어떤 점이 거짓말인데요?"
"여호와도 황우석이나 그레고르 멘델, 루이 파스퇴르와 같이 다 우리동료들이지. 그중 멘델은 식물담당, 파스퇴르는 미생물담당이지만 ...... 그때 여호와가 뿌린 인간은 좀 더 개선된 모델이었어. 척추를 튼튼히 해서 직립을 크로마뇽 모델보다 훨씬 원활하게 했지. 또 두뇌의 용적도 대폭 늘렸고 손의 기능도 향상됐지. 그 모델들을 우선 서식하기 좋은 강가에 흩어 놓았지. 나일강이며 황하,유프라테스, 간지스강등의 유역으로 ......"
"아, 그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고대문명의 발상지들이죠."
"그런데 왜 어린애들도 부모가 주는 음식이나 길을 뭣도 모르고 어긋나는 경우가 있지 않나? 인간도 시간이 얼마 흐른 후 그중 한무리가 사막으로 옮겼지. 그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착각하고서 ......"
나는 어느새 구약성서의 창세기 후반부를 거니는 기분이 들었다.
"그무렵 대부분의 인간들은 종교를 갖게 되었다네. 두뇌의 용량이 큰 까닭에 그걸 채우려면 먹고 번식하는 것 외에 뭔가 다른 것도 생각해야 했거든. 그래서 죽음 후의 세계도 상상하고 뭔가 숭배하는 대상을 찾기 시작했지. 인간들은 우선 크고' 힘이 세고, 무섭고, 신기한 것들을 숭배대상으로 삼았다네. 태양이나 고목. 사자나 뱀, 파도치는 바다나 범람하는 강이며 함께 살지만 이상한 짓을 하는 무당등을 ...... 토템이나 샤마니즘이라고 하는 원시종교는 그렇게 시작된걸세. 그런데 사막으로 간 무리들은 숭배할 대상이 없었어. 태양은 뜨겁고, 그늘을 만들어 줄 나무도 없고, 사자도 넘치는 물도 없으니 그들은 다른데 사는 인간들처럼 숭배할 대상이 안 보이는거야. 그런 불평을 듣게 되자 여호와가 '너희들도 살아갈 능력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라고 위로와 격려를 보내준 준 것 뿐인데 그 인간들은 자기의 형상을 닮은 신이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상상의 신을 만든거지. 그래서 토템이나 샤만 대신 지구상에 최초로 상상의 유일신을 믿는 종족도 생겨난 걸세."
"그리고 여호와님은 다시 예수님을 보내시고 ......"
나도 이제 그의 이야기를 알아듣는척 하며 동조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예수? 그런건 나는 몰라. 하여튼 그 나자렛의 목수 아들이 출현한 이래 지구상에는 대충 잡아도 1만3천7백명이 넘는 여호와의 아들, 혹은 구세주라는 인간들이 연달아 등장했지. 마호메트도 그중의 하나고 중국의 홍수전이나 프랑스의 미셀 벨몬드 역시 ...... 자네가 사는 한국에도 수십명은 될걸. 그중 홍성도나 박장로 같은 교주는 죽고나서 부활했다는 소식도 못 들었지만 아직 생존해 있는 자칭 구세주들도 몇 있지."
"그럼 에덴에는 원래 종교가 없습니까?"
"우리는 그런 영생이나 내세라는 것은 애초에 개념조차 없다네. 그래서 사실은 2천3백여년전 우리 요원중 붓다를 파견했었지. 그런데 그 프로젝트는 실패였어."
"아, 석가모니 말씀이군요?"
"지구에서 뭐라 불리든 그건 별문제 아니고 ...... 붓다는 섹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메시지를 전했지. 물신이나 유일신에 매달리지 말고 스스로 깨우치라는 간단한 원리인데 머물던 곳에서는 거의 먹혀 들지가 않았어. 얼마후 중국과 동남아쪽으로 흘러 가면서 좀 꽃이 피나 했는데 그것도 아니야.자네가 사는 한국에서도 불상 앞에 향과 촛불을 켜놓고, '돈 많이 벌게 해줍쇼'라거나, '아들 대학 합격하게 해달라'고 청원이나 하니 ...... 더구나 그 불상은 븟다의 원래 얼굴이 아니거든. 알렉산더가 동방원정 때 데려간 환쟁이들이 그린 마케도니아 얼짱을 베꼈으니까 ...... 그후로 에덴에서는 인간의 정신세계 개선은 포기했지."
유난히 무덥고 습기찬 밤에 작업진도가 영 부진해 나는 고역을 치루고 있다. 나는 삼류잡지에 지금 일종의 에로소설을 연재중이다. 이미 첫회에 꽤 독특한 캐릭터를 내세워 편집장도 모처럼 "다음편에 기대가 크다"고 했는데, 남녀 주인공이 막 씹을 하게되는 대목에서 자꾸 막히는 것이다. 요즘 인터넷에 난무하는 야설과는 달리 좀 특별한 상황을 만들려는데 다시 읽어보면 너무 유치하고 어색해서 딜리트 하기를 몇번, 짜증만 나는데 담배조차 떨어졌다.
시계를 보니 2자에 두바늘이 딱 겹쳐 있는 것이 새벽 2시11분 쯤이다. 이 시각에 담배를 사려면 24시간 편의점에 가는 수밖에 없다. 우리 동 앞에서 나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아파트만 밀집한 곳이라 몇군데 불빛이 보이지만 대부분 깜깜했고 주위는 고요하다. 나는 우리단지의 담을 넘어 샛길을 이용하기로 했다.
정문이나 뒷문으로 편의점을 가려면 족히 10분은 걸리지만 담을 넘어 마을공원을 질러가면 4~5분 거리기 때문이다. 담이래야 얕은 철책인데 그나마 통학하는 아이들이 항상 두세개는 뿌러뜨려 놔 옷을 찢길 염려 없이 쉽게 넘을 수 있다. 담을 넘어 공원에 몇발짝 들여 놓았을 때 갑자기 눈 앞에 빛을 발하는 물체가 나타났다.
나는 그것이 UFO라는 것을 알았다.
그 물체는 스필버그의 'E.T'나 '우주전쟁' 같은 영화에 나오는 비행접시처럼 거창하거나 요란하지는 않았다. 그저 반투명의 커다란 공 같은 것이 밭침대나 개스 분사 같은 것도 없이 사뿐히 내 눈앞에 내려 앉은 것이다. 평소에 나는 UFO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나 사전 지식도 없었지만 어떻든 내가 실제로나 영화 같은데서도 본 적이 없기에 그렇게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그 안에서 무엇인가 나오고 있었다. 그것도 영화에서처럼 문이 열리고 트랩을 밟으면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벽을 뚫고 소리없이 나타나는 귀신처럼, 그렇게 움직였다. 나도 호기심에 그쪽으로 닥아 갔다. 가까워 지는 그 물체의 윤곽이 점점 들어나자 나는 깜짝 놀랐다.
아! 그는 바로 배아줄기세포의 세계적 권위자, 대한민국의 최고과학자 1호인 황우석교수 아닌가!
"황교수님, 이곳에는 어쩐 일로 ......?"
나는 우선 깍듯이 인사하며 알은 체를 했다. 그를 직접 만나거나 먼 발치에서라도 본 적은 없지만, 이제 세계적 명사가 되고 TV나 신문에 그토록 자주 등장한 황교수를 몰라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 당신은 누구요? 착지할 때는 아무도 없었는데 ......?"
"네. 저는 박민수라고 합니다."
나는 다시 한번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남자들이 통성명할 때의 예의로 손을 내밀었다. 황교수는 한번 나의 아래위를 훑어보고 마지 못한 듯 내 손을 잡았다.
내가 손을 좀 방정맞게 흔들자 "하여튼 반갑습니다."라며 TV에서 본 것처럼 그 탤런트 뺨치게 잘 생긴 얼굴에 매력적인 미소를 잠깐 띄웠다.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그런데 이곳엔 어쩐 일로 ......?"
나는 같은 질문을 되풀이 했다. 그토록 유명한 분이 이토록 늦은 시각에 이런 장소에 불쑥 나타난 것도 궁금하거니와, 혹 내가 무슨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돕고 싶어서였다.
"자동장치 이상으로 불시착을 하게 됐죠. 요즘 정비공들은 너무 나태하고 책임감이 없어서 ......"
황교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내게 물었다.
"당신 여기 한동안 있을 수 있죠? 우선 안전조치를 취해야 되니까 ......"
"물론입죠. 뭐 시키실 일이라도 ......?"
황교수는 내 말을 무시한 채 리모콘 같은 조그만 기계를 꺼내 손으로 조작하자 투명한 막같은 것이 모락모락 일어나더니 마치 바람을 넣는 풍선처럼 커지면서 우리와 UFO 마저 완전히 감쌌다. 그래도 투명해서 주위의 풍경은 그대로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 투명한 막이 바깥과는 우리를 완전히 차단해주는 보호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것은 공상영화에서 얻은 지식이다.
일단 외부와 차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나도 이제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우선 황우석교수가 그렇게 체격이 작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얼굴은 나와 비슷, 오히려 크다고도 할 수 있는데 키는 내 어깨 높이밖에 안돼 기껏해야 초등하교 2~3학년짜리 정도다. 몸집도 가늘고 손은 여자손처럼 작고 부드러웠다. TV로 얼굴만 봐서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우선 친구들 만나면 자랑삼아 이야기할 꺼리가 생겼다.
그리고 우리의 발쪽에는 이상한 물체들이 어른거렸다. 모양은 수박, 아니 크기로 치면 멜론 정도의 공 같은 것이 톡톡 튀기도 하고 뒹굴기도 하면서 움직인다. 대충 30개가 넘는 것 같은데 그중 몇개는 마치 조개가 입을 벌리듯 갈라져 속이 조금씩 보이기도 했다. 저 혼자 움직이고 벌어진 속도 꿈틀거리는 것으로 보아 살아있는 생명체 같았다.
"교수님, 이것들이 뭐죠?"
나는 신기해서 또 먼저 질문했다.
"당신들 같은 인간, 다만 미래의 인간이오."
"네에?"
나는 다시 물으면서 황교수가 농담을 하거나 나를 놀리지 않나 살폈다. 그러나 그는 전혀 웃거나 시치미 떼는 표정이 아니었다. 저명한 과학자가 이렇게 근엄한 표정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진실인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
황교수가 아까 사용했던 리모콘을 조작하자 내가 쓰는 휴대폰의 액정화면 같은 것이 나타났고 그것을 보며 "지금부터 3002년 하고 278일 7시간 5분 45초의 미래가 되는군."이라고 했다.
"그럼 저것이 타임 머신 ......?"
내가 놀란 표정을 짓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 나도 좀 감이 잡혔다. 황우석교수가 미국, 영국 같은 선진국과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더니 세계를 주름잡는 것뿐 아니라 이렇게 과거와 미래도 넘나들고 있구나! ......하지만 저런 멜론덩어리 처럼 생긴 것을 '당신들 같은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머리를 갸우뚱하다 번쩍 떠 오르는 깨달음이 있었다.
"아, 배아복제 줄기세포 ......!"
"그렇소. 그 줄기세포 방식을 적용했지."
"그럼 이것들은 질병 치료에 ......?"
"뭐요? 우리는 인간을 치료하거나 다른 어디에나 활용하지 않아요. 다만 관리할 뿐이지."
"그렇다면 저 복제인간들은 뭣 때문에 만들었죠?"
"만들다니 ......? 우리는 새로 인간을 만들지 않았소. 이건 지금의 시점에서 보자면 미래의 모든 인간이오. 다만 진화를 줄기세포 방법으로 좀 앞당긴 것 뿐이지."
"그럼 저 괴물처럼 생긴게 3천몇년인가 그 미래의 인간 모습이란 말인가요?"
"그렇소."
황교수는 여전히 근엄한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말도 진실일텐데 이제 나는 더 이상 추측이나 깨달음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질문도 못한 채 수치감과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저런 괴물들이 나의 후손, 아니 이 지구의 주인인 인간의 모습이라니 ...... 그 순간 나는 또 하나 간과했던 사실을 떠 올렸다.
황우석교수의 연구성과가 모든 사람의 경탄과 환영을 받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 부작용을 우려해서 몇몇 나라는 줄기세포 배양을 법으로 금지했고 어떤 종교단체는 정식으로 비난성명을 내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 우려가 비록 미래라지만 끝내 이런 비극적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여보시오, 황교수! 당신이야말로 현대의 프랑켄슈타인이었군! 오만한 인간이 신의 영역을 침범해서 결국 이렇게 미래를 망쳐 놓고 말았단 말야! 이걸 어떡할거야? 당장 되돌려 놓든지, 아니면 내가 인류의 이름으로 당신을 손 봐 주겠어! 참, 이런 인간에게 우리나라는 최고과학자 칭호까지 주다니 ...... "
나는 분노에 치를 떨면서 황교수에게 삿대질을 했다. 그의 얼굴은 준수하고 근엄했지만 초등학생 같은 체격을 보니 힘으로는 얼마든지 자신 있었다.
내 태도가 돌변하자 황교수도 기분이 나쁜 모양이었다. 그 큰 눈을 더욱 크게 떴다가 나를 노려보며 잔뜩 인상을 쓰고 있다. 그의 이런 표정을 국민들은 TV같은데서 절대 못봤을 것이다.
"아니, 이 사람이 왜 갑자기 흥분해서 야단이야? 신의 영역은 뭐고 미래를 망쳤다는 것은 또 무슨 말이야? 이런 미래는 바로 당신 같은 인간들이 원해서 선택하고 진화된 당연한 코스인데 ......?"
"이봐요, 황우석씨! 유식하다고 말재간 부리지 마시오! 만물의 영장인 인류의 어떤 미친놈이 저런 괴물로 변하기를 스스로 원한단 말이오? 바로 당신처럼 건방진 과학자들이 이 세상을 망친거지.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에다 온갖 공해를 유발시키는 물질들로 지구를 더럽힌 그 과학자 새끼들처럼......"
"이 친구가 점점 알 수 없는 좆같은 소리를 하네. 내가 왜 황우석이고 세상을 망쳤다는건 또 무슨 개좆 같은 소리야? 더구나 누가 괴물이야. 지금 자네도 스캔해보니 저런 식으로 바뀌기를 동경하고 집착해 왔지 않나?"
인류의 한사람으로써 흥분한 내가 욕설을 내뱉자, 황교수도 점점 화가 나는지 언성이 높아 지고 상소리도 해가며 표정도 험악해 졌다. 나야말로 그의 말을 점점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럼 황우석교수님이 아니세요?"
"물론! ...... 내가 왜 황우석이야?"
"그런데 왜 처음부터 내가 황교수님이라고 불렀는데 가만히 있었습니까?"
"나 원 참! 당신네 인간들은 아무한테나 사장님, 사모님 같은 말을 잘 하잖아? 나는 황교수란 말도 처음 만난 상대에 대한 존칭인줄 알았지."
"아, 그건 죄송합니다. 황우석교수님하고 얼굴이 너무 닮아서요."
나는 내 실수에 대해서는 즉각 사과했다. 그만큼 나는 앗싸리한 놈이다. 사실 체격이 그렇게 작은 것으로도 미리 짐작했어야 할 일이다.
"하기야 얼굴은 닮았겠지. 나도 같은 표본을 사용했고 황우석도 함께 일하는 동료니까 ...... 하지만 그 친구는 나보다 2950여년 먼저 파견됐거든."
"파견이라니 ...... 어디서요?"
"에덴!"
그는 짤막하게 말했다.
"네? 그 성경에 나오는 에덴동산이요?"
"글쎄, 동산이란 말은 인간들이 붙인거지. 우리는 그런 형체나 규모같은 것의 개념이 없으니까 ......"
"그럼 황우석교수님도 에덴에서 ......"
"물론, 우리 동료라니까. 자네는 황우석도 자네같은 인간인줄 알고 있었던 모양이로군?"
어느새 나는 존댓말을 쓰는데 그는 반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것으로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너무나 궁금하고 이해못할 일들 투성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나는 이 남자와 꽤 많은 대화를 나누었건만 내가 확실하게 알게된 것은 그가 황우석교수가 아니라는 것 뿐이다. 그밖에는 그가 하는 말의 어느것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뿐 아니라 더욱 혼란만 늘어날 뿐이다.
"그렇다면 댁 ......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내 원래 이름은 치치카토, 에덴의 동물담당 007번이지. 원한다면 ID카드를 보여줄 수도 있어. 하지만 인간과 통하는 이름은 없다네. 지금 내가 활동하는 시대에는 인간에게 내 이름을 소개할 필요도 없으니까."
"그런데 미래의 인간이 왜 이렇게 흉칙하고 조그맣게 변한거죠? 선생 말씀으로는 진화라고 하지만 ......"
"자네는 용불용설도 모르나?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와 있다던데......"
"다윈의 용불용설이요? 물론 알죠. 그럼 다윈도 에덴에서 ......?"
"아니야. 찰스 다윈은 그저 페스트라, 인간들 말로 하자면 선각자, 혹은 깨인자 정도지. 그러니 갈라파고스섬에서 겨우 거북이를 관찰하고서야 자연선택이니 적자생존 같은 것을 깨닫게 되지. 더구나 그의 진화론은 엉터리 투성이야. 또 내가 말한 용불용설은 슈발리에 라마르크의 학설일세."
용불용설과 다윈은 나의 착각이다. 하지만 진화론이 엉터리? ...... 그가 하는 말마다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그러니 한가지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대화를 한곳에 집중해야 한다.
"이 미래의 인간들이 용불용설과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자, 이것들을 잘 관찰해 보게."
그는 발 앞에 나뒹굴어 있는 멜론덩어리, 혹은 조개처럼 벌어지기도 한 물체들을 가르키면서 설명했다.
"현재, 그러니까 내가 관리하는 시대의 인간은 크게 코파와 히토스, 두가지로 나뉘지. 코파는 단적으로 말하자면 성적인간(性的人間)이고 히토스는 두뇌인간(頭腦人間)이야. 모두 인간 개체의 취향과 생활방식에 따라 자기들이 원하는 쪽으로만 빠른 진화를 거듭했다네. 그래서 코파는 섹스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됐고, 히토스는 사색에 빠지거나 퀴즈풀기, 게임같은 두뇌활동에만 집중할 수 있게 진화했는데 그 비율은 대충 84대 16정도야. 저기 거의 움직임이 없는 인간들이 바로 히토스야."
그는 또 인간이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저 멜론덩어리였다. 다른 것들은 조개처럼 입을 벌리고 통통 튀고 굴르기도 하는데 정말 그 히토스라는 멜론들은 거의 움직임이 없고 가끔 그 자리에서 디뚱거리는 정도였다.
"지금 저게 사색하고 게임하는 모습이라구요?"
"물론!"이라며 그는 손가락질을 해가며 덧붙였다.
"저 히토스는 지금 시간의 흐름에 대해 사색하는군. 20세기의 지구에는 '시간의 철학자'라는 헨리 베르그송이 있었지만 저 녀석은 그 이론을 두단계나 뛰어 넘었어. 그 왼쪽의 히토스는 지금 게임중이야. '스타 그래프트' 버전 73번을 하는데 거의 지고 있구먼."
"아니, 지금 나를 놀리십니까? 저렇게 눈코도 없고 손발도 없이 철학에다 멀티게임까지 한다구요?"
"자네는 사색할 때 눈코를 쓰나? 또 멀티게임은 텔레파시로 다 주고받지."
"자꾸 사람 놀리지 마세요. 나도 성깔있는 놈입니다. 정말 나를 화나게 하면 그냥 확 ...... "
나는 그가 나를 조롱한다는 기분에 선을 그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공갈을 쳤다. 그러나 그는 전혀 흔들림 없이 오히려 반격을 가해 왔다.
"자네는 원래 무식하거나 아니면 너무 건방지군. 자네들은 지금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휴대폰으로 온갖 수다를 다 떨고, 문자를 보내고, 동영상을 받아보며, 주식거래도 하면서 그래, 3000년후 자네 후손들이 그런 것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저 인간들이 자네를 봤다면 정말 놀리고 비웃을만한 일이지."
나는 당장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주춤하자 그는 내가 기가 꺾인 줄 생각했는지 설명을 계속했다.
"코파는 중성인 히토스와 달리 또 암수로 구분되지. 바로 이게 수컷 코파야."
그는 바로 발옆에 있는 것을 발로 툭 찼다. 외부 충격 때문인지 반쯤 벌어졌던 그 수컷 코파는 금방 몸을 움츠려 멜론덩어리가 되며 한바퀴쯤 굴르더니 이번에는 완전히 벌어졌다. 그제서야 나는 그 속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내 눈앞에 들어난 속살은 한가운데에 말조개의 촉수 같기도 하고 살기둥 같은 것이 스멀스멀 움직이면서 점점 커지더니 수직으로 우뚝 섰다. 그것은 영락없이 사람의 발기한 좆 형상이었다. 다만 크기는 내 좆보다 용적으로 두세배는 실히 될 것 같았다. 특히 끝의 귀두 같은 부분은 어린애 주먹만큼 크고 뭉뚱했다. 그 밑에 양쪽이 똑같이 달걀을 쭈글쭈글한 껍질에 싸 놓은 것 같은 형상은 사람의 불알을 닮았고, 주위에는 꼬불꼬불한 털이 에워싸고 있다.
"저게 남자의 생식기 ......?"
"바로 봤네. 아, 마침 자위를 하는군."
그가 빙긋 웃으며 말하기에 눈을 돌렸더니 마치 무반동포를 발사했을 때의 포신처럼 혼자 솟았다 내렸다 하더니 그 귀두가 찍찍 액체를 뿜어댄다. 저것이 생식기라면 저 액체는 정액이 틀림없다. 서너번 뿜어댄 정액은 소주잔으로 하나는 실히 되어 보인다.
"저 암컷 코파도 자위를 하려는 동작인데 ......?"
그가 가르키는 곳을 보니 역시 완전히 벌어진 그 물체는 영락없는 성인 보지를 확대해 놓은 것이었다. 아니, 그저 적당한 배율로 확대만 한 것이 아니라 야수파 화가의 붓끝을 거친 것처럼 한층 색깔이며 개성이 강조된 보지였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나도 '여성 생식기 구조'라고 의학서적에서 본 것처럼 대음순, 소음순, 음핵, 요도구, 질입구, 그 아래로 들국화 꽃잎처럼 주름잡힌 곳은 항문이라는 부분 명칭을 다 맞힐 수 있었다.
다만 내가 본 설명도나 직접 경험한 성인 보지보다 음핵은 훨씬 크면서 짙은 선홍색이었고, 대음순은 흙갈색에 부채살처럼 생긴 것이 혼자서 꿈틀거렸다. 음모도 내가 보아온 어떤 여성보다 무성했으며, 누가 건들이지도 않았는데 저 혼자서 소음순이 벌어지며 습기찬 질구의 구멍이 뻥 뚤린 것처럼 벌어졌다가 혼자 옴찔옴찔거리더니 분비액도 더욱 늘어나 일부는 흘러내리기도 했다. 그 조그만 움직임들이 일순간 정지되는가 싶더니 전체가 마치 진동으로 해놓은 휴대폰처럼 혼자 부르르 떨면서 투명한 분비액을 분무기처럼 뿜어내고는 계속 옴찔옴찔 거린다.
그 옆에는 두마리의 코파가 엉켜 있는 것도 보였다. 이제 그의 설명을 안들어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암수가 어울려 우리가 하듯 씹을 하고 있는 것이다. 두 코파는 서로 붙었다 떨어졌다 박음질을 하다 함께 부르르 떨더니 떨어진다. 수컷 코파의 좆은 정액과 암컷의 분비액으로 온통 미끌미끌한데 원상태로 돌아가는 중이라 좀 흐늘흐늘해 보인다. 암컷 코파는 질구가 옴찔옴찔하면서 방금 수컷이 싼 정액을 쿨컥쿨컥 토해내고 있었다.
그 광경은 격렬할뿐 아니라 내가 보아 온 것보다 훨씬 크고 발달된 좆과 보지의 위용 때문에 내 좆도 불끈거릴만큼 선정적이었다. 하지만 방금 내가 본 광경이 포르노 테이프의 클라이막스를 클로즈 업한 것이 아니라 전경(全景)이라는 점에서 엄청난 충격과 함께 절망감에 빠졌다.
"미래의 인간은 저렇게 그저 자위를 하거나 씹만 해댄단 말입니까?"
"보시다시피 ......" 라며 그는 빙그레 웃고 손바닥을 펴 작은 아치를 그리며 그들의 성공작을 자랑하듯 제스쳐를 해 보인다.
"얼마나 효율적이야? 바로 용불용설의 이론을 확실히 증명해 주는 모범적 모델이지. 성감대는 전부 저 안에 몰려있고, 자네 말처럼 눈코나 손발등 필요없는 부분은 모두 없어졌으니 완전히 씹질에만 몰두할 수 있지."
"아아 ......!"
나는 머리를 쥐어 뜯으며 신음했다. 가슴이 울컥거리며 눈물마저 쏟아지려 한다. 어찌 인간이 저토록 추락할 수 있단 말인가.
아, 인간이 본래부터 지녔던 위엄과 매력, 무수한 시와 노래를 만들게 했던 서로에 대한 그리움이나 동경과 환상, 환희에 몸부림치고 못 이루었을 때의 가슴 저림과 애처로움마저 한 없이 아름다웠던 그 사랑이란 것은 어디로 가벼렸는가. 불과 몇천년 후에 인간이 성게나 지렁이와 다름 없는 하등동물로 전락하다니 이것은 핵무기로 지구가 멸망하는 것보다 더욱 처참한 비극이다.
"황교수, 아니 치치카토님! 인류의 미래가 정녕 이렇게 펼쳐 진다면 이것은 너무나 엄청나고 처참한 비극입니다. 지금이라도 이런 참극을 극복하고 바꿀 방법은 없겠습니까?"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진지하게 물었다. 문득 영화 '터미네이터'도 떠 올랐다. 그 영화는 1.2.3편을 모두 봐서 스토리는 오히려 헷갈리지만, 현재와 미래가 서로 얽혀 있는중 미래에서 날아온 로보트의 도움을 받아 지구를 멸망에서 구원하는 내용이다. 그 주인공처럼 나도 미래에서 왔다는 그의 도움을 받으며 인류의 미래를 다시 설계할 수 있다면 ...... 설사 실패하더라도 기꺼이 내 목숨 하나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냉담하고 냉소적이었다.
"뭐가 비극이야? 그리고 왜 바꿔?"
비웃음을 띠우며 반문하는 그를 당장 목을 졸라버릴까, 좀 더 설득해서 도음을 받아야 하나, 분노로 피가 끓어 오르면서도 나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아무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했다.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면 나는 무척 짜증이 난다네!. 하지만 한번만 더 말하지. 이런 변화는 당신들, 바로 인간이 원하고 선택한 일이야. 그래서 용불용설의 이론처럼 인간들은 그 방향으로 계속 진화해 갔지. 물론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론이나 적자생존의 원칙도 이 진화를 뒷받침해 주지. 외부의 자극이나 영향이 없어도 우리가 계산해보니 인간은 3만년 후면 완전히 저런 모습으로 진화하게 되어 있었어. 그걸 우리는 다만 시간을 10분의 1로 줄인거야. 인간들이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지."
나는 그의 말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절대로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반박을 하려 해도 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니 별 수단이 없다. 그래도 말꼬뚜리나마 잡고 늘어지려 했다.
"외부의 자극이나 영향이 없어도 3만년 후면 인간이 저 꼴로 바뀐다고 .....? 지구의 역사나 호모 사피엔스 이후의 인류역사가 얼마나 장구한데 겨우 3만년만에 인간이 멜론덩어리가 된단 말입니까?"
"역사를 들먹이려면 우선 그렇게 옹졸하고 고정된 시각부터 고쳐야 되네. 자네도 롤러 코스터를 타 봤겠지?"
이건 또 무슨 뚱딴지? ...... 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청룡열차 같은거요?" 라고 대꾸했다.
"그래. 인류역사는 롤러 코스터처럼 오랫동안 똑딱거리며 오르막을 힘겹게 올라가서 약간의 내리막을 미끄러지다 지금 자네가 사는 시대에서 급강하하고 있는거야. 생각해보게...... 인간은 5000년 전에 설형문자를 만들었건만 천년이 더 지나서야 파피루스에다 조금 발전된 상형문자를 기록할 수 있었지. 대량 복사를 가능케 한 활자는 불과 고작 550년 전에 등장했어. 진공관 1백만개를 이어 만든 인간 최초의 컴퓨터가 발명된 것은 61년 전이야. 그런데 지금 5세대의 PC는 처리속도를 300만배, 크기는 3400분의 1로 줄였을뿐 아니라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장서를 다 보관하고도 메모리가 남네. 또 당시에는 꿈도 못 꾸었을 인터넷과 동영상 같은 기능도 갖고 있지 않나? 새처럼 공중을 날고 싶다는 인간의 소원은 3천5백년전 신화(神話) 속의 이카루스나 가능했고, 깃털을 움직여 날아보겠다는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시도는 500년 전에 실패했네. 기체역학을 응용하고 동력을 사용한 라이트형제의 최초 비행기는 102년전 12초동안 32메터를 날았을 뿐이야. 하지만 지금은 음속의 몇배나 빨리 날고, 수백명의 승객을 태우는 비행기들로 지구 상공의 항공망은 거미줄보다 더 조밀하게 엉켜있지 않나. 급강하 하면서 가속도가 붙은 롤러 코스터는 이제 중력도 무시한 채 트위스트를 추지. 미래는 그렇게 더욱 빨리 변한다네."
그가 해박한 것인지 원래 다변인지, 하여튼 속사포처럼 나의 이의제기에 대한 반박이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 예를 든 것은 모두 기계 아닙니까? 인간, 아니 생명체는 인위적 조작이 아니면 그렇게 바뀌지 않을걸요?"
"참, 답답한 사람 ......"이라며 그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부화한 올챙이의 아가미와 꼬리가 허파와 뒷다리로 완전히 바뀌는데는 종류에 따라 43시간에서 17일이먼 족하네. 아마존의 코카파리는 구더기에서 번데기를 거쳐 성충이 되는데 2시간18분이면 돼. 카멜레온이 주변 풍경처럼 보호색을 바꾸는데는 5초밖에 안걸려. 이런 것은 자체 변태라 하더라도 서식처가 바뀌면서 두더지와 펭귄이 눈과 날개를 없애는데 고작 8000년밖에 안 결렸어. 원래 도미와 비슷했던 넙치가 유영하며 사냥하는 대신, 밑바닥의 퇴적된 먹이에 맛을 들이면서 배쪽은 하얗게 변하고 눈은 등쪽으로 다 옮겨지는데도 4300년이 걸렸을 뿐이야. 물론 그 동물들은 새 환경에 편리하도록 진화된 채로 다시 몇만년을 이어 왔지만 ...... 인간은 수천년간 농경생활을 해왔지만 대부분 인간들은기근에서 헤어나지 못했지. 그러나 식량문제를 거의 해결하면서 농후음식의 섭취가 늘어나더니 최근 100년 사이에 창자 길이가 평균 1.3메터나 짧아 졌다네. 동물이나 그중 하나인 인간의 진화도 때로는 롤러 코스터의 하강 때 처럼 가속도가 붙고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방향을 틀기도 한다네."
"치치카토님. 솔직히 저는 댁이 황우석교수가 아니라는 것 말고는 하시는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두더지나 넙치가 눈깔을 없애거나 옮긴 비유와, 그토록 찬란한 문화와 문명을 이룩했던 인간이 멜론덩어리로 돌변한 것은 제 상식으로는 도저히 결부가 되지 않습니다. 좀 쉽게, 그리고 제가 알아듣도록 설명해 주실 수는 없을까요?"
"자네는 보기보다 훨씬 무식한 인간이로군. 같은 말 반복하는 것 다음으로 내가 싫어 하는 것이 무식한 상대와 대화하는 것인데 ...... 하지만 내가 본의는 아니지만 자네 구역을 침범한 꼴이 됐으니 일단은 설명을 해주지."
우리는 편하게 마주 앉았다. 의자를 당겼거나 아니, 애초에 의자 같은 것도 안보였지만 그가 앉는 자세를 취하기에 나도 따라 해봤더니 엉덩이와 등을 무엇인가 푹신한 것이 받쳐주고 있었다.
"우리가 자네같은 인간을 지구에 뿌려놓은 것이 6000년 남짓인데 그동안 인간들은 무척 다양하고 빠른 진화를 거듭해 왔네."
"인류의 역사가 고작 6000년이라고요? 에이, 그건 잘못 아셨겠죠. 네안데르탈인이나 크로마뇽인 같은 조상격 원시인들은 벌써 10만년에서 3만년 전까지 지구에 존재했다는 것을 화석들이 증명해 주고 있는데 ......?"
"아, 그것들은 말하자면 에덴의 실패작들이었네. 사실 우리의 기술수준도 완벽한 것은 아니거든. 그래서 더러 시행착오도 겪고 실패를 거울삼아 개선도 하지. 또 실패작의 폐기물은 완전히 수거해야 하는데 그전에는 그런 규정들이 잘 안 지켜졌어. 그래서 공룡이나 매머드 같은 것의 잔해들도 아직 지구에 남아 있지."
"하지만 인류는 유인원에서 원시인, 그리고 지금의 인류로 연결되어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런 연결고리는 애초에 없어. 아까도 내가 말했잖아.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엉터리라고 ...... 자네가 사는 시대의 인간 원형은 6000년 전쯤에 시작된 거야. 그때 담당이 여호와였지."
"네, 여호와? 그 성경에 나오는 천지창조의 유일신 말씀입니까?"
"천지창조? 유일신? ...... 자네도 그걸 믿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착각과 왜곡이 만들어낸 허튼 소리야. 하여튼 인간들은 거짓말도 잘 만들어 내고 속아 넘어가기도 잘 한단말야. 다른 동물은 사냥할 때나 자신이 사냥감을 모면하려 할 때 말고는 속임수를 안 쓰지."
"어떤 점이 거짓말인데요?"
"여호와도 황우석이나 그레고르 멘델, 루이 파스퇴르와 같이 다 우리동료들이지. 그중 멘델은 식물담당, 파스퇴르는 미생물담당이지만 ...... 그때 여호와가 뿌린 인간은 좀 더 개선된 모델이었어. 척추를 튼튼히 해서 직립을 크로마뇽 모델보다 훨씬 원활하게 했지. 또 두뇌의 용적도 대폭 늘렸고 손의 기능도 향상됐지. 그 모델들을 우선 서식하기 좋은 강가에 흩어 놓았지. 나일강이며 황하,유프라테스, 간지스강등의 유역으로 ......"
"아, 그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고대문명의 발상지들이죠."
"그런데 왜 어린애들도 부모가 주는 음식이나 길을 뭣도 모르고 어긋나는 경우가 있지 않나? 인간도 시간이 얼마 흐른 후 그중 한무리가 사막으로 옮겼지. 그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착각하고서 ......"
나는 어느새 구약성서의 창세기 후반부를 거니는 기분이 들었다.
"그무렵 대부분의 인간들은 종교를 갖게 되었다네. 두뇌의 용량이 큰 까닭에 그걸 채우려면 먹고 번식하는 것 외에 뭔가 다른 것도 생각해야 했거든. 그래서 죽음 후의 세계도 상상하고 뭔가 숭배하는 대상을 찾기 시작했지. 인간들은 우선 크고' 힘이 세고, 무섭고, 신기한 것들을 숭배대상으로 삼았다네. 태양이나 고목. 사자나 뱀, 파도치는 바다나 범람하는 강이며 함께 살지만 이상한 짓을 하는 무당등을 ...... 토템이나 샤마니즘이라고 하는 원시종교는 그렇게 시작된걸세. 그런데 사막으로 간 무리들은 숭배할 대상이 없었어. 태양은 뜨겁고, 그늘을 만들어 줄 나무도 없고, 사자도 넘치는 물도 없으니 그들은 다른데 사는 인간들처럼 숭배할 대상이 안 보이는거야. 그런 불평을 듣게 되자 여호와가 '너희들도 살아갈 능력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라고 위로와 격려를 보내준 준 것 뿐인데 그 인간들은 자기의 형상을 닮은 신이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상상의 신을 만든거지. 그래서 토템이나 샤만 대신 지구상에 최초로 상상의 유일신을 믿는 종족도 생겨난 걸세."
"그리고 여호와님은 다시 예수님을 보내시고 ......"
나도 이제 그의 이야기를 알아듣는척 하며 동조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예수? 그런건 나는 몰라. 하여튼 그 나자렛의 목수 아들이 출현한 이래 지구상에는 대충 잡아도 1만3천7백명이 넘는 여호와의 아들, 혹은 구세주라는 인간들이 연달아 등장했지. 마호메트도 그중의 하나고 중국의 홍수전이나 프랑스의 미셀 벨몬드 역시 ...... 자네가 사는 한국에도 수십명은 될걸. 그중 홍성도나 박장로 같은 교주는 죽고나서 부활했다는 소식도 못 들었지만 아직 생존해 있는 자칭 구세주들도 몇 있지."
"그럼 에덴에는 원래 종교가 없습니까?"
"우리는 그런 영생이나 내세라는 것은 애초에 개념조차 없다네. 그래서 사실은 2천3백여년전 우리 요원중 붓다를 파견했었지. 그런데 그 프로젝트는 실패였어."
"아, 석가모니 말씀이군요?"
"지구에서 뭐라 불리든 그건 별문제 아니고 ...... 붓다는 섹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메시지를 전했지. 물신이나 유일신에 매달리지 말고 스스로 깨우치라는 간단한 원리인데 머물던 곳에서는 거의 먹혀 들지가 않았어. 얼마후 중국과 동남아쪽으로 흘러 가면서 좀 꽃이 피나 했는데 그것도 아니야.자네가 사는 한국에서도 불상 앞에 향과 촛불을 켜놓고, '돈 많이 벌게 해줍쇼'라거나, '아들 대학 합격하게 해달라'고 청원이나 하니 ...... 더구나 그 불상은 븟다의 원래 얼굴이 아니거든. 알렉산더가 동방원정 때 데려간 환쟁이들이 그린 마케도니아 얼짱을 베꼈으니까 ...... 그후로 에덴에서는 인간의 정신세계 개선은 포기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