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넌 밥 먹듯이 하니?
영화 <더 퍼스트 타임>
언젠가 내게 성에 관해 고민이 있다며 상담을 신청한 사례가 있었다. 이 날 대화의 주제는 줄곧 섹스였다. 문제는 밥 먹듯이 섹스를 갈망하는 문화가 싫다는 것. 연인이 만나 사랑을 하는 데 있어 결론은 곧 섹스였고, 심지어는 섹스를 위한 만남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 주된 고민의 원인이었다. 상담자의 표정은 꽤나 심각했지만, 이러한 문제는 늘 있어왔고 나 역시도 심심치 않게 들었던 고민이기에 망설임 없이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이 때 내가 조금 더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한 내용은 이랬다.
밥과 섹스
사람은 누구나 밥을 먹어야만 살 수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음식, 먹는 양, 시기, 하물며 선호하는 치킨 브랜드조차 모두 제 각각이다. 여기서 밥과 섹스의 공통점이란, 섹스 또한 필수적이라는 것이다.(어떤 면에서는, 특히 생산적 활동의 의미라는 가정 하에)
그럼에도 밥과 섹스가 공통 시 될 수 없는 이유가 한 가지 있다. 예를 들어 식사 메뉴를 정하는데 누구는 김치찌개를, 누구는 된장찌개를 고른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 같은 한식집을 가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는 김치찌개를 골랐는데 누구는 파스타를 고르다면 우린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런 경우, 보통 한 명이 양보를 하고 또 다른 한 명의 의견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섹스는 양보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밥과 섹스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네가 먹고 싶은 것을 먹었으니 내일은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자고 하는 것은 양보가 되고, 오늘은 내가 하고 싶어 섹스를 했으니 다음엔 네가 하고 싶을 때 하자는 것은 왜 강요가 될까?
답은 여기에 있다.
둘 사이의 완벽한 차이는 욕구에서 나타난다. 같이 밥을 먹는 사이는 배가 고프다는 감각적인 느낌으로 시작해 먹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 같은 목적으로 같은 자리에 앉아있다. 하지만 성욕 같은 경우에는 원하는 시간과 장소, 패턴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두 사람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밥과 섹스, 둘 사이의 욕구의 정도 차이 역시 확연하게 드러나는데, 밥을 먹자고 하는 친구에게 생각이 없다며 거절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으나 섹스를 하자는 연인에게 매몰찬 거절의 표시를 했을 때에 감정의 전선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면 그 차이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차이를 좁히기 위해 결론으로 가보자. 이 같은 문제는 우리가 섹스를 너무 멀리하고 있기 때문에 야기된 것이고, 누군가는 너무 쉽게 생각해 멀어지고, 누군가는 너무 어려워 멀리하게 되는 것이 지금의 섹스다.
어제 저녁에 먹은 삼겹살을 오늘 또 먹자고 했을 때 한사코 거절할 사람은 없을 텐데 말이다. (어쩌면 어제 먹은 상황을 설명하며 상대방을 이해시키려고는 하겠지만.)
이처럼 섹스를 밥 먹듯이, 누구나 먹는 밥처럼 조금 더 편하게 생각한다면 욕구 차이에서 오는 트러블은 쉽게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은 만족 시켰는지, 반응은 어땠는지 살피기 급급한 게 아니라, 그냥 편하게 즐기는 것이다. 오늘 먹은 떡볶이가 맛 없었다고 몇 날 며칠 후회하지 않고 더 맛있는 집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길지 않은 시간에 많지 않은 몇 마디 말로 상담을 마치고서 홀가분한 기분으로 나오면서 나는 말했다.
“스파게티요? 난 순댓국이 먹고 싶은데, 그럼 내일 점심은 순댓국으로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