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BDSM] 변태의 사생활
당신들 속의 변태들
안녕하신가? 남로당에 새로 글을 기고하게 된 Field-Dog(필독)이다. Field-Dog은 말 그대로 '들개' 정도의 뜻이 되겠다(콩글리시 이다만...). 나는 강한 성욕을 느꼈을 때 유난히 가슴이 방망이질 친다. 그 울렁대는 느낌이 어찌나 강한지, 그런 순간에 나는 스스로를 비루먹은 들개처럼 생각할 정도다. 그 느낌은 누가 내 피부를 뚫고 붓으로 심장의 표피를 간질이는 것처럼 허기지고 아찔하다. 이 '울렁댐 지수'(써놓고 보니 참 말도 안 되는 쓰레기 조어다.)는 내 특유의 변태적 기질이 자극받았을 때 급상승한다. 여성의 누드사진을 보았을 때 느껴지는 나의 성욕은 보통의 남성들과 같다. 그러나 사지가 묶인 채 매달려 있는 여성의 사진을 보았을 때 느껴지는 성욕은 아예 성욕의 차원을 넘어설 정도다. (사실 이런 종류의 흔한 이미지엔 이제는 만성이 되어 새로운 형태의 변태적 이미지를 보아야 자극을 받지만) 이건 거의 충동질에 가깝다. 이때 나는 몸 둘 바를 모르고 발작하는 내 심장을 느낀다. 사진도 그럴진대, 내가 나체의 여성을 직접 로프로 묶고 있을 때는 상태가 어떻겠는가. 그럴 때는 피에 굶주린 드라큘라도 얌전하게 보일 정도다. 며칠을 굶고 오랜만에 만난 먹잇감에 발광을 하는 들개나 다름없다.
그래서 나의 가명을 Field-dog으로 정했다. '필독' 정도로 읽어주시면 된다. 여러분들이 나를 알거나 알게 될 확률은 지극히 적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00동 사는 김모군'이 아니라 누군지 알 수 없는 필독일 뿐이다. 무슨 소리냐 하면, 나는 여러분들에게 나의 존재를 들킬 생각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들은 꽤 많다. 나는 당신들 속의 변태다. 그리고 '우리'는 뭉쳐지기 어려운 산발적인 집단이다. 아주 조용히 존재하는.
나는 앞으로 이런저런 경험과 에피소드, 어떤 주제에 대한 단상을 비교적 자유롭게 써서 올릴 생각이다. 그리고 되도록 성적인 담론이 많을 예정이다. 첫 순서는 '당신들 속의 변태들' 시리즈다. 이 변태성의 주제는 BDSM에 관한 것이다. BDSM은 딴지에서는(그리고 다른 곳에서도) 흔하게 다뤄진 주제고 그래서 식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통 SM을 다루는 기사나 칼럼은 그 내용이 뻔하다. 크게 두 가지 중에 하나밖에 없다. 하나는 소돔과 고모라를 고발하듯이 이런 행위들이 창궐하고 있는 사회현실에 우려를 보내는 것이다. 두 번째는 SM을 호의적으로 소개하면서 여러분들의 성생활에 신선한 자극이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어차피 내 입장에서는 모두 피상적인 얘기들이다.
나에게, 그리고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들에게 SM은 새로운 즐거움을 위한 모험이 아니다. 평범하게 살고 싶어도 도저히 그럴 수 없게 하는 빠져나올 수 없는 본능 같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SM은 위험한 유혹이나 삶의 활력소, 아니면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더러운 영역 정도로 인식된다. 우리에게 SM은 정상적인 성욕만큼이나 강한 제 2의 성욕이다. 나는 타고난 변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타고난 변태란 학습을 통해 SM에 흥미를 갖고 접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 기준에서 이들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다. 어차피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SM 기질을 갖고 있다. 내가 말하는 변태는 어린 시절 첫 몽정도 하기 전에 여자를 묶고 때리는 상상으로 밤을 지새우며 유년기를 보낸 남자, 학교에서 처음 선생님에게 종아리를 맞으면서 야릇한 쾌감을 느끼고 스스로에게 혼란을 겪었던 여자들이다. 이들은 SM에 호기심을 느껴 한번 시도해보기는커녕 알 수 없는 욕망에 두려워하고 고민하다가 성인이 되어서야 자신의 성적 정체성이 SM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런 사람이 자신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라운 안도감을 느낀 사람들이다. 즉 태생적이거나 거의 태생적인 변태들이다. 그리고 SM을 즐기기는커녕 억누를 수 없는 욕망에 어쩔 수 없이 SM을 끊지 못하고 계속하면서 자괴감을 느끼는 이들도 많다. 나처럼 그저 담담한 사람들이 훨씬 많지만. 물론 몰래 숨어 사는 답답함이야 모두에게 있긴 하다.(거꾸로 비밀의 세계 속에 존재한다는 즐거운 소속감도 다소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내가 이제부터 쓰게 될 '당신들 속의 변태들'은 골수 변태들의 실제 모습과 행위들,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단상에 대한 것이다. SM의 간략한 개념이나 사전적 정의, 이론과 실제 같은 것보다 더 내밀한 영역을 탐구하고 싶다. 나는 나를 포함한 변태의 무리들을 이해하거나 호의적으로 바라볼 것을 종용하고 싶지는 않다. 절절한 커밍아웃엔 관심 없다. 변태들도 꽤 괜찮은 녀석들이라고 강변할 생각도 없다. 정치적인 올바름이나 다원성을 요구하지도 않겠다. 싫은 건 싫은 거다. SM은 옳지도 그르지도 않은 하나의 성향일 뿐이라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여러분은 나를 쓰레기로 볼 수도 있고 그냥 무덤덤할 수도 있으며 호의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모두 상관없다. 단지 변태라 불리는 인간들의 속내와 실상을 자세히 살펴보자는 것이다.
이 시리즈는 5편 정도가 될 것 같지만 너부리 형님의 말씀은 자유롭게 한 번 써보라는 것이니, 상황을 봐서 4편도 7편도 될 수 있다. 어쨌든 쓸 수 있는 만큼 써볼 생각이다. SM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이나 철학자들의 입장도 가능하면 다뤄 볼 생각이다. 이 세계의 당사자인 나는 그런 지식이나 사상 따위를 유심히 읽고 연구해왔다. 뭐든지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서라면 어설픈 전문가 정도는 되기 쉬운 모양이다. 나로 말하자면 굉장히 어설픈 초심자 정도밖에 못 되는 인간이지만, 유치한 잡설이나마 풀 수 있는 데까지 풀어볼 예정이다. 시리즈 사이에 BDSM과 상관없는 재미난 경험담이나 에피소드 스토리도 외전으로 끼어 넣고 싶고. 물론 당 시리즈가 끝났다고 연재가 끝날 예정은 아니다.
그러면, 제 1편 '변태의 사생활'이다.
변태의 사생활
어제(7월 20일) 친한 여자 후배를 만나서 오랜만에 함께 식사를 하고 술도 마시면서 밤늦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전화통화와 채팅 따위로 keep in touch는 자주 하고 있었지만 직접 얼굴을 본 건 햇수로 3년 만이었다. 이전엔 이성으로 대해본 적 없는 귀여운 젖살 덩어리였는데, 늘씬하고 세련된 외모로 업그레이드 된 모습을 보니 그 처자를 이성적으로 어떻게 할 생각과 욕망은 없어도, 가슴이 제멋대로 설레는 걸 보면 역시 남자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여름밤, 곤충들이 가로등에 박치기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녀는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동화풍의 깜찍한 외모에 어린 공주를 연상시키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거기다 짧은 미니스커트…. 인사동 입구 금강제화 앞에서 그녀를 보자마자 '로리타'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렇다고 후배에게 미안하지는 않다. 그녀를 성적 대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으므로. 그리고 성적 대상으로 생각하는 상대에 대한 상상은 단순한 설렘의 차원을 훌쩍 넘어서므로. 그래, 나는 변태다. 그 정도 변태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반문이 들려온다. 누구나 변태 기질을 갖고 있다고도 하고, 귀여운, 혹은 가벼운 의미로 변태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런 차원을 넘어섰다. 나는 진지한 의미로 뼛속까지 변태인 녀석이며,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사디스트, 즉 SM 세계의 용어로는 '멜돔'이다.
[멜돔이란 male과 dom(지배를 뜻하는 domination의 약자)의 합성어로, 지배적 성향을 갖고 있는 남성 SMer를 말한다. 덧붙여 SMer란 SM 생활을 누리거나 즐기는 사람, 혹은 SM적 성향을 일정수준 이상 갖고 있는 사람을 크게 총칭하는 말이다.]
내 얼굴에 침 뱉기는 싫다. 여기서 '변태'라는 용어를 쓰는 건 부정적인 가치판단이 들어가 있어서가 아니다. 일반사람들이 나 같은 인간을 표현하는 용어를 그대로 쓸 뿐이다. (후배가 이 글을 보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후배는 흥분한 채 얼마 전 있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늦은 밤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자취방에 돌아가는 길거리에서,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남자가 자신을 쳐다보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더란다. 기분 나쁘게 웃으며…. 그리고 손의 움직임이 범상치 않더란다. 그 변태는 자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후배는 공포에 질린 채로 집으로 뛰어갔고 든든한 남동생의 얼굴을 보자 긴장이 풀리면서 눈물이 마구 쏟아졌단다. 남동생은 누나를 괴롭힌 변태를 처단하러 밖으로 뛰어갔고... 뭐 그런 이야기다.
결과적으로 후배의 남동생에게 통쾌한 구타를 당했다는 그런 류의 인간들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심각한 변태들의 이미지다. 뿔테안경에 더벅머리, 츄리닝과 바바리 차림으로 테러를 저지르는 비밀스러운 낙오자들. 나의 변태로서의 강도는 이런 사람들과 비슷할지 모르지만 그 형태는 전혀 다르다. 나는 정상인이며-혹은 정상인 취급을 받으며- 주변 사람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생활하고 있다. 어머니를 제외하고 누구도 나의 변태적 성향을 알지 못한다. 나의 베스트 프렌드조차도. 나는 나의 성향을 숨기는 것에 익숙하다. 나는 더러운 벌레 취급을 당하기 싫다. 되도록 누구도 알게 하고 싶지 않다. 홀로 비밀스럽게 원하고 행동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여성을 제 딴에 매너 있게 대하는 것(얼마나 젠틀해 보일는지는 미지수이지만)이 거짓은 아니다. 나는 성적으로만 가학의 기질이 있을 뿐이지, 실제로는 나름대로 순하고 착한 녀석이다.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학대받는 사회적 약자들의 소식을 접할 때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분노를 느낀다.
후배를 만나러 가는 길, 지하철에서 아름다운 여성을 마주쳤다. 나는 그녀의 뒤를 쫓아 그녀가 앉은 맞은편 좌석에 앉아 그녀를 관찰했다. 내 눈은 배고픈 벌레처럼 그녀의 전신을 훑는다. 아주 탐욕스럽게…. 이윽고 그녀에게서 풍겨 나오는 알 수 없는 우아함의 정체가 밝혀진다. 쭉 뻗은 몸, 활짝 펴진 등, 창백하도록 흰 피부와 못생긴 발가락, 도도하고 조용한-그러나 어딘가 절제된 몸짓, 밑으로 내리깔린 눈동자, 뒤로 묶은 머리, 그리고 무엇보다 A자형으로 깔끔하게 떨어지는 어깨 라인. 딱 봐도 오랜 시간 무용이나 발레를 해온 여성이 틀림없었다. 팔다리의 멍과 자잘한 상처들도 춤을 추다 생긴 것이리라. 그녀는 화장도 하지 않았고 헐렁한 슬리퍼 차림이었지만 보면 볼수록 아름다웠다. 흙 속의 진주를 홀로 발견했다는 자부심 섞인 쾌감.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내 영역 속에 가두고 싶다는 소유욕. 반하다기 보다는 탐욕스런 관찰이었다. 이런 관찰력은 어디엔가 있을 노예기질의 여자를 탐색하면서 단련된 것 같다.
보통 남자들은 매력적인 여인을 우연히 보았을 때 애무와 섹스, 그리고 심할 때는 결혼 따위를 빠르게 상상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의 상상은 수위를 넘어섰다.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그녀를 학대하고, 비참한 노예생활을 어쩔 수 없이 감수할 수밖에 없는 그녀와 그 모습을 비열하게 바라보는 나를 상상했다. 그 상상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씨발년, 개 같은 년, 천한 보지, 더러운 창녀라고 내뱉으며 강간하는 것? 좆 빨어 씨발년아. 내가 박아주니까 좋아? 뒤로 하니까 존나 좋지? 존나 좋으니까 개처럼 짖어 씨발년. 그리고 얼굴에 침을 뱉고 그녀가 마치 수채 구멍 정도 되는 것처럼 정액을 배설하고 그녀를 방치한 채 돌아서는 것? 아니다. 그런 것도 내 기질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겠지만 본격적인 사디스트-Dom-는 더 장기적이고 집요하다. 그리고 되도록 많은 상상력을 동원한다. 방금 소개한 섹스가 습관적이라면 일반인과 SMer의 중간 정도일까나. 물론 여기서의 SMer는 나와 같은 골수 변태를 말하지만.
나는 여자를 묶어보기도 하고 천장에 매달아 보기도 하고 매질을 하기도 했으며 개목걸이를 채워 나체로 끌고 다녀 보기도 했다. '노예'라고 불리는 여성에게 방뇨를 명령하고 그것을 지켜보기도 했다. 비록 며칠간이지만 우리 비슷한 것에 가둬 사육해본 적도 있다. 온갖 도구를 동원해 질과 항문을 강제로 단련시키고 확장시켜보기 했다. 납치나 비인간적인 강요로 이뤄진 일들이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녀들은 모두 나와 반대되는 성향을 지닌 매저키스트들이었다. 볼록한 것과 오목한 것의 이상적인 조합이랄까. 마치 레고 같다. 주인과 노예란 어디까지나 합의에 의한 관계다. 어쨌든 여기까진 기본에 속한다. 조금만 창조적이라면 학대와 굴욕의 종류는 끝이 없다. 콘돔을 씌운, 진동으로 설정된 삐삐를 여자의 질 속으로 넣은 후 출근을 시켜 무작위로 호출을 한다. 언제 삐삐를 울릴 지는 나의 마음이다. 회의 시간일수도 있고 상사의 지시를 듣고 있는 순간일수도 있다. 그녀는 참아야 한다. 노예가 캔버스를 들고 몇 시간을 서 있을 수도 있다. 캔버스에는 키와 몸무게, 가슴둘레, 성기의 품질과 특이사항 등이 적혀 있다. 그리고 생리일도. 이를테면,
[음부 : 검은 줄이 짙게 가 있는 것으로 보아 많이 사용된 중고품.]
하는 식이다. 정육점에 걸린 육류 취급을 함으로써 노예를 비인격화시키는 것이다. 노예의 음부를 초정밀 촬영해 되도록 크게 현상한 후 액자에 담아 그녀와 함께 있는 방에 걸어두기도 한다. 노예를 다른 '주인'에게 며칠간 '대여'한 적도 있다. 나와 그는 노예를 발가벗겨서 세워놓고는 유방과 음부를 만지작거리며 그것들의 '품질'과 '시세'(애초에 그런 기준과 시세 같은 것은 있지도 않다.) 따위를 심드렁하게 들먹이며 장사치들처럼 흥정을 했다. 결정된 대여료는 3만원. 하루 연체료는 만원이었다. 애초의 비밀약속에 따라 그는 노예 반납을 하루 연체했다. 이런 '상행위'는 노예가 보는 앞에서 마치 그녀가 옆에 없는 것처럼 아주 뻔뻔하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녀에게 가능한 한 많은 기회의 수치심과 굴욕감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그녀에게는 쾌감으로 전환된다. 주인은 이렇게 노예의 입장을 아주 우회적이고 간접적으로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그래서 노예는 자신의 욕망을 적절히 증폭시키고 관리할 줄 아는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났을 때 영혼까지도 기꺼이 바치는 것이다. 또한 모든 선택권은 주인에게 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주인은 두 사람 분의 고민과 결정을 떠안아야 한다. 주인장 노릇은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주인-노예 관계를 지속적으로 원하는 것은 노예 측일 경우가 많다. 주인이 지쳐서 관계를 정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Jan-Saudek, Lonely-Girls's-Dream
지하철의 미녀는 군자역에서 내렸고 나도 따라 내렸다. 당연히 내가 먼저 말을 걸었고 그녀는 내가 자신의 직업을 맞추자 무척 놀랐다. 그리고는 '내가 뒤를 쫓을 수밖에 없었던 대단한 미모'에 관한 아부 대행진을 통해 그녀의 전화번호를 받을 수 있었다. 운이 좋으면 며칠 내로 그녀와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애인 사이로 발전할 가능성, 명랑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지금으로선 지극히 적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학대 받을 것을 제안하거나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그녀와 아주 정상적인 데이트를 즐길 생각이고 그녀에게 나의 기질이 적발되게 행동하지도 않을 것이다. 현실과 상상은 이렇게 차이가 크다.
나는 재빠르게 현실로 돌아왔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종로 3가 역까지 갔고 약속보다 늦었다며 후배에게 핀잔을 들었다. 그리고 밥값과 술값 모두를 내야 했다. 이렇게 나는 상상에서 일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당신들 속의 변태인 나는 참을 수 없는 가학적인 욕구를 느끼며 몸부림친다. 마지막 SM 플레이가 언제였더라, 꽤 오래 되었다. 금단증상이 날 미치게 한다. 1년 동안 섹스를 하지 않은 것보다 더 괴롭다. 이럴 때는 당장 옆에 펨섭이 없다는 사실이 날 미칠 듯이 슬프고 우울하게 한다. 울분에 가까운 감정이다.
[펨섭은 여성을 뜻하는 fem(feminine의 약어)과 복종을 뜻하는 sub(subordinate의 약어)을 합한 조어로, 여성 메저키스트를 뜻한다.]
술꾼들은 술고픈 위장과 배고픈 위장이 따로 있다는데, 나에겐 일반적인 성욕과 SM적인 성욕이 따로 존재한다. 여성과 일반적인 명랑을 하는 건 다른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즐겁다. 거기에 불만이나 부족함은 없다. 문제는 밥 달라고 소리치는 식신 들린 SM 위장이다. 언제나 텅 빈 것처럼 배부르지 않다.
Setting이 길었다. 다음부터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 내가 스스로 별종임을 느낀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경험들도 덧붙여서. 첫 스타트를 끊느라 잡설이 너무 길었다. 다음 편부터는 더 컴팩트한 분량과 구성으로 최대한 재미있게 써볼 테니 조금만 참으시라.
나는 재빠르게 현실로 돌아왔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종로 3가 역까지 갔고 약속보다 늦었다며 후배에게 핀잔을 들었다. 그리고 밥값과 술값 모두를 내야 했다. 이렇게 나는 상상에서 일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당신들 속의 변태인 나는 참을 수 없는 가학적인 욕구를 느끼며 몸부림친다. 마지막 SM 플레이가 언제였더라, 꽤 오래 되었다. 금단증상이 날 미치게 한다. 1년 동안 섹스를 하지 않은 것보다 더 괴롭다. 이럴 때는 당장 옆에 펨섭이 없다는 사실이 날 미칠 듯이 슬프고 우울하게 한다. 울분에 가까운 감정이다.
[펨섭은 여성을 뜻하는 fem(feminine의 약어)과 복종을 뜻하는 sub(subordinate의 약어)을 합한 조어로, 여성 메저키스트를 뜻한다.]
술꾼들은 술고픈 위장과 배고픈 위장이 따로 있다는데, 나에겐 일반적인 성욕과 SM적인 성욕이 따로 존재한다. 여성과 일반적인 명랑을 하는 건 다른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즐겁다. 거기에 불만이나 부족함은 없다. 문제는 밥 달라고 소리치는 식신 들린 SM 위장이다. 언제나 텅 빈 것처럼 배부르지 않다.
Setting이 길었다. 다음부터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 내가 스스로 별종임을 느낀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경험들도 덧붙여서. 첫 스타트를 끊느라 잡설이 너무 길었다. 다음 편부터는 더 컴팩트한 분량과 구성으로 최대한 재미있게 써볼 테니 조금만 참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