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BDSM] 페티시, 그리고 환상들
누구나-이것이 위험한 표현이라면, ‘많은 사람들이’라고 조금 우회해서 가 보자- 페티시에 대한 환상, 혹은 직접적인 집착이 있을 것이다. 펨돔 시리즈 3편에서는 감히, 페티시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왜 ‘감히’인가 하면, 페티시는 복잡하고 다양하며 애매하기 때문이다. 분명 SMer들은 바닐라-일반인(?)-들보다 더 강하고 다양한 페티시를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SM이 페티시인 것은 아니고, 그 정도가 일반인들보다도 약한 SMer도 있다. SM과 페티시는 다루기 어려운 문제다. SM이 페티쉬적인 요소를 많이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에 관한 설명을 하면서 이곳저곳을 정확하게 끊을 만한 적절한 지점은 사실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은, 이 변태칼럼 연재에서 페티시는 쏙 빼고 넘어가려고 했었다. 그렇지만 저번 시간에 끝내려고 했던 펨돔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부족한 듯싶고, 마침 그 부족분이 페티시에 관한 내용이다 보니 이참에 비록 수박 겉핥기라도 페티시를 통한 이야기를 조금 풀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참고로 페티시의 정의라든가, 심리적이고 내밀한 속성에 대해서는 다음 칼럼에서 자세히 알아볼 예정이다.
왜 [남성에 의해 왜곡되었거나, 혹은 왜곡될 수 있는 펨돔의 이미지]가 페티시즘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물론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페티시적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상대와 성적인 유희를 즐기고 싶을 것이다. 그렇지만 펨돔과 페티시의 경우는 그 밀착 정도가 특히 더 강하다. 예를 들면 나는 한 온라인 SM 커뮤니티에 올라온 펨돔의 프로필 중에서 대략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본 적이 있다.
- 제발 부탁인데 발에 페티시 있는 새끼들은 멜섭인 척 하고 작업 걸지 마라.
그 밑에는 이에 열렬히 동조하는 펨돔들의 댓글이 달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펨돔 분들, 많이 짜증났었나 보다. 실제로 이런 사례는 흔하다고 한다. 말하자면 일군의 남자들이 여성의 발이라고 하는 대상에 대한 페티시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멜섭인 척을 했다는 것인데, 정말 그랬다면 그건 의도가 불순한 것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최소한 그들이 실망스럽고 일방적인 플레이로 일관했다는 뜻이 되겠다. 그건 그렇고 왜 발에 대한 페티시가 펨돔 - 멜섭 관계와 중첩되는 것일까?
풋워십, 즉 발에 대한 숭배 내지는 숭배행위는 SM에서 중요한 역할극 중 하나다. 발은 신체의 가장 밑에 위치한 부분이며, 가장 우직한 노동-체중을 지탱하고 걷는 것 등의-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때로는 마치 하인과도 같다. 어쨌든 문화적으로 관습적으로도, 발이 손보다 천하다는 관념은 매우 일반적이다. 실망스런 문학, 예술작품이나 영화 따위를 접했을 때 흔히 짜증을 내며 하는 말이 이거 아닌가.
- (내가) 발로 해도 저것보다는 낫겠다.
[발에 키스한다.]는 것은 [손등에 키스한다.]와는 차원이 다르다. 아랍지역에서는 후궁들이 자신의 지배자에 대한 존경과 복종의 뜻으로 몸을 굽혀 술탄의 발에 키스를 하는, 별로 신사적이지 못한 관습이 있었다고 하는데 변태인 나는 이런 이야기를 접하고 성적으로 흥분하고 말았지만 남녀 차별적이고 막 되먹은 관습인 것은 분명하다. 여하튼 소정의 합의를 거친 관계에서, 돔의 발에 대한 섭의 숭배는 아주 자극적인 굴종임이 분명하다. 풋워십은 보통 발보다 훨씬 소중하다고 생각되고, 실제로도 그보다 소중하게 다뤄지는 부위-얼굴이나 머리, 입술, 혹은 입 안-를 발과 접촉시키는 등의 행위가 주를 이룬다. 간단히 말하면 대략 발가락을 빨거나 발등에 키스하는 것 따위다.
그러니 풋 페티시(발에 대한 페티시)가 있는 남자들은, 괜찮은 펨돔이 하나 걸려들면 꿈에 그리던 여자의 발을 마음껏 만지고 물고 빨고 비비적거릴 수 있으니 얼마든지 펨돔에게 작업을 걸어댈 수 있으리라. 이 역시 [같이 모텔방에만 들어가면 그때부턴 파라다이스, 나의 세상]이라는 사고를 지닌 위험한 녀석들로 분류될 수 있겠다. 나는 분명 그렇게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진지한 펨돔 - 멜섭 SM 관계에서도 페티시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다음의 예쁜 처자를 보라. 흔하디 흔한 포르노그라피 이미지다.
남성독자분들이라면 충분히 즐기셨기를. 자 그럼 다음 사진들은?
위의 사진들은 그냥 일반적인 누드라고 할 수도 있겠고, 페티시적 요소가 소프트하게 들어갔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점점 더 리얼 페티시에 가깝다.
관능적인 다리와 발들이다. 이렇게 페티시즘은, 욕망의 대상으로써 축소되고 분리되며, 그리고 그 상태에서 강조된다. 위의 사진들에서처럼, 풋페티시를 욕망하는 남자에게 여자의 사랑스러운 표정과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균형 잡힌 몸매는 필요 없을 때도 많을 것이다. 그는 한 명의 여성, 이라는 인격 대신 그녀의 발과 대화할 테니(페티시즘을 욕할 생각은 없다. 내게도 많은 페티시가 있다. 여성의 발을 포함해서.).
이제부터는 이러한 페티시가 펨돔 이미지와 결함된 사례를 보자.
여자의 가지런한 두 발이 남자의 등을 짓누르고 있다. 이 사진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아니 무엇인가? 주인공은 여자도, 남자도 아니다. 그리고 남자의 등도 아니다. 저 사진 밖 영역에 있을 여자의 두 발이다. 이 사진의 주인공은 명백히, 남자를 내리누르되, 관능적인 모습으로 지배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행위에 동원되는- 발이다. 이것은 남성, 그 중에서도 남성 피학자들에 의해 생산되고 소비되는 이미지이며, 또한 매우 흔한 이미지이다. 남자를 지배하는 여성의 ‘신체’-‘인격’이 아니라-는 매력적이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이 ‘그녀들’에게 원하는 방식이다. 다음 사진은 더 추상적이다.
여자의 발은 잔인하고 냉정하게도, 그리고 스스로의 우아함은 해치지 않는 부드럽고 무감정한 동작으로 장수풍뎅이 한 마리를 죽일 셈이다. 이미 저 뒤의 한 마리는 곤죽 상태의 시체가 되어 있다. 장수풍뎅이는 아주 튼튼하고 단단한 곤충이다. 황소와 마찬가지로 강한 남성성을 상징하곤 한다. 그러나 그런 장수풍뎅이일망정 어떻게 자신보다 수백, 수천 배가 더 큰 사람의 체중을 이기겠는가? 하이힐을 신은 여자의 발은 희고 가냘프고 부드럽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불쌍한 풍뎅이를 엄습하고 있다. 마치 발이 잔인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남성 피학자들은, 여성에 의해 자신의 인격-특이 남자로서의 인격, 즉 관습적으로 ‘여성성’보다 강하다고 여겨지는 ‘남성성’-이 파괴되고 유린되는 것을 원한다. 금상첨화라고, 그것이 아름답고 섹시한 다리와 발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식으로 남성에 의한, 여성에 대한 욕망은 전통적인 남/녀의 권력관계가 역전되는 순간에도 변함없이 유지된다. 다음 사진은 더욱 추상적이다.
이번에 짓밟히고 있는 녀석은 빵 조각 같은 물체다. 사실 빵을 밟는 게 지배나 학대와 무슨 연관이 있겠는가. 그러나 저 사진의 구도를 보라. 살짝 들려진 여성의 발은 위압적인 각도를 점하고 있으며, 마침 사진이 찍히는 순간 빵은 서서히 으깨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저 발목과 발, ‘발의 복장(신발과 스타킹)’의 자태는 아주 도발적이다. 이것은 분명한 SM 사진이며, 펨돔 이미지이고, 넓은 의미로는 포르노그라피에 속한다.
이 이미지를 통해, 이미지의 소비자인 남성 피학자는 어떤 판타지에 이르게 될까? 저 빵조각은 무엇을 나타낼까? 아마 자기 자신일 것이다. 만약 자기 자신의 어떤 일부라면, 그것은 필시 자신의 남근일 것이다. SM에서 남근은 흔히 권력을 상징한다. 프랑스의 고전 SM 소설인 [O의 이야기]를 보면 성적 지배/피지배가 행해지는 비밀스런 성 안에서 남성 지배자들이 남근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기이한 복장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의 여자노예들 역시 하반신은 나체인 상태지만, 그녀들에게는 남근 대신 남근의 폭력을 수용해야만 하는, 안쪽으로 패인 음부가 있다. 이 여자들은 자신의 음부가 언제라도 편리하게 ‘사용’될 수 있게 하기 위해 서 있을 때나 무릎을 꿇고 앉을 때나 다리를 벌리고 있어야한다.
삼천포로 잠깐 빠져보자.
남근과 권력을 함께 생각하는 습관은 학습된 전통일 수도, 본능적인 심리일 수도, 다른 어떤 것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관념이 일반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 중 어느 쪽이 남근을 더, 권력의 상징으로 생각할까? 혹은 되도록 그렇게 생각하려고 할까? 당연히 남성이다. 따라서 [남근 = 권력]이라는 뿌리 깊은 관념을 유지시키는 쪽은 거의 전적으로 남성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되도록 굴욕적이고 고통스럽고자 하는 멜섭들에게 자신의 남근이 학대되는 것이 판타지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저 남자, 얼마나 아플까? 저런 것을 보고 흥분할 수 있다니 멜섭이란 정말 대단한 인종이다.(무시하거나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경향이 다른 내가 알 수 없는 감각이라는 점에서. 덧붙여 내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멜섭들은 남자들에게는 상당히 까칠한 경향이 있다. 섭이라는 이유로 만만한 양반들이 아니다.)
그런데 저 와중에서도 펨돔은 섹시한 옷차림과 미끈한 다리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놓칠 수 없다. 여성이 성적 대상일 때, 그녀들은 성적으로 매력적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다양한 방식으로 ‘입맛에 맞게’ 표현된다. 예를 들어 다음의 사진에서 저 여성의 복장은 돔의 것인가, 섭의 것인가?
비교해보면 알겠지만, SM 이미지에서 흔하디흔하게 발견되는 저런 패턴의 복장들은 기실 별반 차이가 없다. 저것은 섭을 위한 컨셉도 돔을 위한 컨셉도 아니다. 여자를 욕망의 대상으로써 해석하고 다루는 남자들을 위한 컨셉이다. 그 남자들이 돔이든 섭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어쩌면 여자들은 이렇게 교묘하고 정밀한 계략(이 계략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에 의해 페티시즘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케인과 밧줄이 상징하고 있는 바를 제외하면, 둘 사이의 차이점은 없다.
둘 모두 페티쉬적 욕망의 대상일 뿐.
둘 모두 페티쉬적 욕망의 대상일 뿐.
이렇게 보면 강력한 전사도, 불쌍한 노예도 아닌 둘 모두를 포함하고 있는 중첩된 여성 이미지에 대한 남성의 욕망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성적 매력을 기본으로 깔고, 약하고 순결하고 선량하면서도 흉측한 괴물을 두 동강내는 괴력의 미소녀들. 섹시한 변신과정을 자랑하는 미소녀 전대물부터 [소녀검객 아즈미 대혈전]에 이르기까지, 일본에는 이런 이미지의 여성성이 대중문화의 한 종류로 대량생산, 소비되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남자의 판타지를 위한 종합선물세트일지도 모르겠다. 펨돔이자 펨섭, 그리고 로리타. 물론 매력은 기본이고.
이 이미지는 일본 미소녀가 아니라 스페인의 세계적인 일러스트 작가 로요(Royo)의 작품이다. 그의 일러스트 속에서 여자들은 종종 용감한 전사이면서도, 동시에 사슬이나 몬스터에 붙잡혀 있는 노예이기도 하다. 이중성을 지닌 여성에 대한 판타지는 우리의 생각보다 일반적이다.
어쨌든 나의 결론은 펨돔마저도 여전히 남성에 의해 성적 대상이 되는 객체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들을 위한 포르노그라피는 없는 것일까? 나는 멜돔이지만, 눈부시게 섹시한 꽃미남 소년이 사슬에 구속된 채 구도의 중심에 있고, 푸근하게 생긴 평범한 호빵아줌마에게 성적 희롱을 당하는 이미지를 보고 싶다. 내가 그것을 성적으로 즐길 리는 없지만, 다양성은 좋은 것이니까.